지난 봄 전세계 수백만대의 컴퓨터 시스템을 마비시켰던 「러브 바이러스」 고향, 필리핀에도 최근 인터넷 비즈니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인터넷 잡지인 비즈니스2(http://www.business2.com) 최근호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창업 보육센터 해치아시아(http://www.hatchasia.com) 등의 입주업체들을 예로 들어 필리핀의 e비즈니스 열기를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센터에는 아워터프(http://www.ourturf.com)라는 10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지난 6월 처음 문을 연 데 이어 지금까지 모두 10여개 닷컴 기업들이 잇달아 입주해 인터넷 신천지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아워터프는 10대들이 좋아하는 음악, 패션, 인생상담 등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사 웹사이트를 찾는 네티즌들이 대부분 컴퓨터 엔지니어라는 데 착안, 이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및 전자상거래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에는 채팅을 즐기던 회원들이 모여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뜻이 맞으면 회사를 차리는 사례도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워터프는 자연스럽게 거대한 전자장터(e마켓플레이스)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또 올해초부터 해치아시아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DFNN(http://www.dfnn.com)도 필리핀 증권거래소장을 지낸 라몬 가르시아 회장이 인터넷에서 예금 입출금 및 주식을 거래하는 온라인 금융회사를 설립한 후 불과 1년여 만에 필리핀을 대표하는 인터넷 그룹으로 발전했다.
DFNN은 다음 달 인터넷 회사로는 처음으로 필리핀 증권거래소(PSE)에 주식상장을 앞두고 있는 등 최근 필리핀에 불고 있는 닷컴 투자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1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필리핀 최대 부동산 재벌인 아얄라 그룹까지 아이아얄라(http://www.iayala.com)라는 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해 필리핀 대학 등 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인터넷에 대한 투자열기는 이제 필리핀의 전 산업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요즈음 필리핀 전역에서 불고 있는 인터넷 투자 열기가 10여년 전 인도 정부가 방갈로르 등 주요 도시에 「소프트웨어 단지(STPI)」를 건설해 IBM,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등 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한 것을 계기로 오늘날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수출국가로 발돋움했던 것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필리핀의 성장 잠재력이 결코 인도 못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국립 필리핀 대학을 비롯해 마닐라 아테네오 대, AMA 컴퓨터 전문대 등에서 매년 수만명씩 배출하는 필리핀 프로그래머들은 아시아권에서 영어 구사능력이 가장 우수한 데다가 근면성과 저렴한 인건비 등에서도 외국 업체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메리카온라인(AOL)이 고객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필리핀에서는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 등으로 1년에 8000∼9000달러면 충분해 미국에서 드는 비용 5만달러에 비하면 20%에도 못미친다. 또 하루종일 반복되는 일을 해야 하는 고객지원센터 직원들의 이직률도 미국에서는 연 평균 100%를 넘나드는 데 비해 필리핀은 5∼8%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시티뱅크와 칼테크, 앤더슨컨설팅 등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은 몇년 전부터 소프트웨어를 필리핀에서 개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메리카온라인(AOL)과 피플소프트 등 미국 IT기업들이 신설하는 고객지원센터도 최근 하나 둘씩 필리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필리핀은 총 8000여만명에 달하는 인구 중에 자신의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40만명에 그치는 등 다른 아태지역 국가에 비해 정보통신 환경이 상당히 뒤떨어지는 편이다.
이처럼 열악한 통신환경을 극복하고 최근 인터넷에 기반한 경제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필리핀은 「인터넷의 혜택이 결코 선진국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후진국에서 더욱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