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현대판 노비문서?

『우리사주가 빚이 됐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평가손이 너무 커서 퇴사를 못해요.』

올 상반기에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A사는 3만원대 공모를 하며 직원들에게도 근무연수와 직급에 따라 우리사주를 나눠줬다. 3만원대에 등록한 A사의 주가는 올 상반기 공모주 인기를 반영하며 연일 거래없이 상승, 9만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우리사주 배정을 통해 2000주 가량을 받은 B씨는 한때 평가이익만 1억원이 넘기도 해 부푼 꿈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주가폭락으로 공모가를 밑도는 주식들이 속출하면서 A사의 주가도 2만원을 밑돌 만큼 하락했다.

B씨는 주식을 받기 위해 회사에서 알선해준 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았고 매달 20만원 정도의 이자를 내고 있다. 대출이자를 물면서도 우리사주 주식을 팔 수 있는 1년만 지나면 몇년치 연봉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사주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B씨가 현재가로 우리사주를 팔게 되면 평가손만 대략 3000만원에 이른다. B씨는 『예전에는 주식에 「주」자도 몰랐는데 큰돈이 생긴다는 동료들의 말에 우리사주를 받았다』며 『다들 고액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한 주라도 더 받으려 했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의 C씨는 최근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C씨도 회사담보대출로 사주를 받았고 퇴사를 할 경우 바로 대출금을 갚아야 할 상황이어서 사표를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밑천이 될 것 같았던 우리사주가 6개월도 안되서 「노비문서」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A사 한 곳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공모가로 우리사주를 나눠준 대부분의 회사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직원은 공공연히 『사주 때문에 빚쟁이가 됐는데 일은 해서 뭐하냐』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공모에 참여했거나 기업가치를 믿고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도 주가하락으로 큰 손해를 본 마당에 우리사주 손실분만 걱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다」는 해법을 들려주기에는 당사자들이 겪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게 문제다.

<디지털경제부·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