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논설위원 jsuh@etnews.co.kr
잭 웰치가 100여년 역사의 GE 회장에 취임한 것은 1981년,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취임 후 그는 곧바로 GE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우선 소형가전과 광산운영권 등 하드웨어 부문을 과감히 매각하고 자동화사업부문 및 R&D센터를 확장키로 했으며 초거대 M&A였던 RCA 인수건을 밀어붙였다. 2단계에서는 조직의 계층을 축소하고 최고경영진을 순환 배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구조조정계획이 발표되자, GE 경영진은 『우리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최고의 기업 아닌가. 풋내기가 너무 말이 많군』하는 식이었다. 30억달러 규모의 광산운영권을 매각했을 때만 해도 이들은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라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듬해 다시 소형가전 부문을 매각하자 비로소 『저치가 우리를 변화시키려 하는데, 앉아서 당할 순 없지』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경영진의 저항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번째는 관행과 이미 이루어진 투자 등의 합리적 이유를 들어 변화에 반대하는 기술적 저항(technical resistance), 두번째는 기득권의 붕괴에 위협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 정치적 저항(political resistance), 세번째는 여러 해에 걸쳐 형성된 사고방식과 좁은 시야에 안주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문화적 저항(cultural resistance)이었다.
웰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600명의 전임원이 참석한 한 GE연례회의에서 저항
하던 6명의 사장을 한꺼번에 해임시켰다. 어차피 해임시키는 마당에 그럴싸한 이유를 대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잔인하게도 이들이 『GE의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사실대로 말해 버렸다.
퇴출된 사장들은 연간 50억달러에서 100억달러의 매출실적을 올렸으며 나름대로 목표를 달성해온 경영자들이었다. 그러나 웰치가 보기에 이들은 서로간에 개방되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데 인색했고 달성 가능한 목표만을 세워놓고 협상해 가는 관료형 타입의 사람들이었다. 기업이 변화되려면 경영자들이 가치관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GE의 구조조정은 급류를 탔다. 이 과정에서 웰치가 경영진의
저항을 막아내며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게 한 기법이 바로 IMF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워크아웃(work out)이다. 모든 절차와 방법을 단순화(simplicity)시켜 신속(speed)하고 자신감(self-confidence)있게 추구함으로써 벽이 없고 비관료적이며 열린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그 기본 목표였다. 웰치는 이 기법을 전직원이 모여 토론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의 타운미팅(town meeting)을 통해 전사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워크아웃이 성공하면서 매출순위 9위였던 GE는 웰치 취임 10년째인 1991년 마침내 IBM을 제치고 미국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취임 20년째인 2000 회계연도에 들어서서는 매출액 1300억달러에 시가총액은 1981년 당시보다 무려 40배나 불어난 5000억달러를 기록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두고 「지칠 줄 모르는 경영자」 「살아 있는 20세기 경영교과서」 등 최고의 수식어를 헌사하기도 했다.
그런 웰치도 내년 4월이면 퇴임해야 한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것일까. 잭 웰치의 마음이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다는 소식이다. 이달 중 후임자를 확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까지도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후임자 물색이 회사경영보다 더 어려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자신이 쌓아 놓은 지난 20년간의 업적을 기술적·정치적·문화적으로 훌륭하게 계승해 줄 적임자를 찾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끝까지 저항하던 6명의 사장들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재임시절 아무리 훌륭한 평가를 받은 전임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할 후임자를 찾고자 하는 관행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