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 분할 배경과 파장]하-통신업계 흐름 바꾸는 모험

전세계 통신업계가 무차별 M&A를 통한 영역확장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AT&T의 분할안은 업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 성공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통신사업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는 사업규모라는 논리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되려 몸집을 줄이기로 한 AT&T의 결단은 향후 통신업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실험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몇년간 미국의 통신업체들은 모든 서비스를 묶음 판매하는 「원스톱서비스」 체제를 갖추기 위해 M&A에 몰두했다. 월드컴·스프린트·버라이존 등의 장거리지역전화업체들은 저마다 이동통신·인터넷 서비스 강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관련업체를 인수했으며 AT&T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에서도 브리티시텔레컴(BT)·도이치텔레콤 등의 구 국영통신업체는 물론 보다폰 같은 이동통신업체들도 「몸집 불리기」 대열에 동참했다.

이같은 흐름은 아시아에서도 나타나 지난 3월에는 홍콩의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 PCCW가 음성통신사업 강화를 위해 아시아권 M&A 사상 최대규모인 310억달러를 들여 홍콩텔레컴을 인수했다.

한마디로 세계 통신업계가 종합통신서비스체제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AT&T의 분할안이 나온 것이다.

그동안 이동통신과 인터넷에 대한 장밋빛 미래에 매달려 통신업체에 막대한 지원을 해오던 투자자들이 서서히 단기수익쪽으로 투자방향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투자효과 발생시점이 불확실한 통신업계에 계속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통신업체의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AT&T처럼 몸집을 줄이고 수익성있는 사업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AT&T의 발표가 나온 다음날 미국 2위 장거리전화업체 월드컴의 버니 에버스 CEO는 장거리전화사업부의 트래킹주식 발행가능성을 시사했다. 다음달 1일 구체적인 조직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인 월드컴은 현재의 방만한 사업조직을 데이터 및 음성통신 서비스 두 부문으로 나눈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월드컴이 실제로 기업을 2개사로 분할한다면 이는 AT&T의 분할안 못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월드컴은 지난 10년간 60여개의 업체를 인수하며 소규모 장거리전화업체에서 지금은 전세계 인터넷백본망시장을 장악한 종합통신서비스업체로 성장했다. 따라서 월드컴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몸집 불리기」를 청산한다는 것은 통신업계에 또 하나의 충격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

한편 AT&T의 분할계획은 유럽의 구 국영통신업체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AT&T의 발표가 나오자 유럽의 통신전문가들은 이들 업체도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럽의 대형통신업체들은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한 채무증가로 AT&T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BT는 연이은 주가하락으로 올들어 시가총액이 710억달러나 줄어들었으며 도이치텔레콤도 시가총액의 40%가 빠져 나갔다.

위기의식을 느낀 이들 업체도 나름대로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도이치텔레콤과 프랑스텔레콤은 올초 인터넷사업부를 상장했지만 현재는 공모가 아래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양사는 연말로 예정됐던 이동통신사업부의 주식 발행을 내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트래킹주식 발행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AT&T식의

완전분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AT&T식의 분할에 대해 반대의견이 없지는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통신사업에서 특정분야에 서비스를 특화하는 것은 이로울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AT&T의 분할안 발표후 성공에 대한 의문으로 AT&T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앞으로 통신업계에 「몸집 줄이기」가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를지, 아니면 계속해서 「몸집 불리기」가 이어질지는 AT&T의 성공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말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할 예정인 BT의 행보도 통신업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