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또 舊態 국감

국정감사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16대 국회들어 처음으로 열린 이번 국정감사는 출발부터 우여곡절을 겪더니 결국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386세대들의 대거 국회 입성으로 물갈이가 돼 이들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구조조정의 여파로 소속을 총리실로 옮겨간 과학기술계 출연연 관계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정감사를 담당하고 있는 상임위원회가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는 국회 정무위인데다 공공기술·기초기술·산업기술연구회 등 3개 연구회와 소속 20개의 출연연이 국정감사를 오늘 하루에 모두 받아야 하니 국정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겠냐는 것이다. 별다른 쟁점이 없는 출연연 감사는 단순히 시간상으로만 따져도 출연연당 배정되는 시간이 30여분 남짓이다. 더군다나 정무위 의원들의 관심이 최근 불거진 정현준 사건과 공정위 등 굵직한 현안에 있는데 굳이 어려운 과학기술에 대해 제대로 된 감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출연연 관계자들로서는 발가벗기기식 감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도 있겠지만 사전지식이 없는 의원들의 「말도 안되는 자료」 요청 때문에 몇날 며칠을 고생해 온 것을 감안하면 허망한 노릇이다.

국정감사에 나서는 의원들로서도 정보부족에다 단어부터 낯선 출연연 질문준비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의원들의 질문자료를 준비중인 의원비서진들도 전문적인 지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여기저기 귀동냥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감사를 하는 입장이나 감사를 당하는 입장 모두 이런 감사라면 왜 전부가 감사준비에 고생해야 하느냐고 하소연이다. 과학기술을 우선한다는 현정부가 벌여놓은 잘못된 출연연 구조조정의 결과다.

출연연의 입장에서 보면 국정감사를 통해 의원들의 서릿발같은 질책도 두렵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최근 출연연이 처해 있는 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자리인 것도 사실이다.

「설익은 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도 있듯 전문지식이나 사명감도 없이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겉핥기식 국정감사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제대로된 국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연구회별로 나눠 격년제로 감사하는 등 수감대상 기관수를 줄이거나 출연연에 대한 국감일정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국가과학기술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출연연이 제대로 갈 길을 간다.

<경제과학부·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