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 컴퓨터업계 내년전망-올 수준 유지 자신

「낙관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진검승부를 해 볼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는 내년에 전개될 국내 전산시장 기상도를 바라보는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의 공통된 정서다.

유가급등, 금융경색, 기업구조조정 지연, 환율불안 등 국내 경제를 둘러싼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내년 국내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의욕에 불타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것 같다.

경제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 주요 대기업은 물론 인터넷 벤처기업까지 내년 경영계획을 축소지향적으로 짜고 설비투자 규모를 줄이려는 판에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은 오히려 확대지향적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과거 중대형 컴퓨터업계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최근 국내 경제 전반에 흐르는 정서와 달리 이처럼 자신감에 차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뀐 결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경기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 기업들은 모든 투자를 일단 보류하거나 축소하고 본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경제에서는 줄일 수 없는 투자분야가 있다. 바로 정보기술(IT), 특히 전산투자 분야다.

기업경쟁력과 직결되는 전산투자에 소홀할 경우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을 국내 기업들은 지난 IMF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에 따라 갖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내년에도 올해에 버금가는 전산투자를 실시할 것이라는 게 중대형 컴퓨터업체의 관측이자 바람이다. 특히 통신·금융·인터넷 기업들의 경우 전산투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영 제1과제」로 대두됐다는 게 관련업계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한국HP의 정경원 마케팅담당 이사는 『경기가 다소 둔화되고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보이나 인터넷 벤처기업의 창업은 내년에도 줄을 이을 것이고 디지털 경제에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이 전산 투자만큼은 지속할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올해 국내 서버시장 성장률 50%대보다는 다소 떨어지지만 내년에 최소 30% 정도의 성장률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대형 유닉스와 윈도NT서버, 대형 스토리지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정 이사의 관측이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반종규 제품판매 및 마케팅 담당 상무는 『올해는 시장이 워낙 좋아 서버업체간의 경쟁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다. 내년에는 시장이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여 서버업체간의 시장주도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라면서 『한국썬은 내년을 진검승부를 펼치는 해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썬은 대형 통신서비스업체 및 증권·금융시장을 주 공략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반 상무는 강조하면서 연말까지 대규모의 인력을 새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컴팩코리아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사업본부 홍순만 이사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국내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지만 하반기 들어 경기가 다시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홍 이사는 나름대로 진단하고 『컴팩코리아는 올해 국내 시장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매출성장을 기록할 것이며 내년도에 이와 비슷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컴팩코리아는 최근 들어 큰 폭의 매출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대형 유닉스와 스토리지 분야에서 사업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후지쯔의 김병원 마케팅 담당이사는 『금융·공공부문의 구조조정 지연 및 기업의 유동성 부족으로 대규모의 전산투자 프로젝트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으나 IMT2000 서비스 관련 서비스 사업자와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공공부문, 대기업의 전자상거래부문 등에서 대규모 전산투자가 줄을 이을 것으로 본다』면서 『특히 IMF 이후 전산 투자에 나서지 못했던 국내 제조업체들이 전산투자에 본격 나설 경우 내년 국내 전산시장은 올해 못지 않은 호황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반면 한국IBM은 내년 전산 경기와 관련,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기업·금융구조조정·유가 인상 등 여러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아 국내 기업들이 올해처럼 전산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것. 그러나 한국IBM도 내년 매출목표를 확대 지향적으로 설정할 것임을 내비쳤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