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벤처에 따뜻한 시선은

배태화 (주)와이드링크 대표 widelink@widelink.co.kr

대망의 새 천년을 축하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은 달랑 두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가을은 쓸쓸한 계절이니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올 가을처럼 쓸쓸함을 느끼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연초에 불었던 희망과 설레임, IMF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는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에 우리 경제는 또다시 위기론을 들먹이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해야 했건만 일부 부도덕한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사악한 부정이 아직도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조그만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로서 최근 발생한 일부 벤처기업의 부도덕한 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작게는 해당기업의 주주와 구성원을 유린하고 크게는 벤처인 전체를, 나아가 사회 전체를 욕되게 하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는 데 대해 벤처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품과 도덕적 해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새 천년을 맞이해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약속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새 천년의 첫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설계해야 하는 요즘 느껴지는 가을바람은 여느해 느꼈던 그런 바람이 아니다. 벤처기업을 대표하는 닷컴기업 거품론과 10월 대란설이 대두돼 가뜩이나 어려운 시간을 견뎌 왔건만 희망적인 설계보다는 어두운 전망만을 접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호재보다는 악재가 쌓여가는 우리 경제의 현실과 이에 맞물려 주저앉은 주식시장과 어두운 경기 전망이 기업의 설비투자를 위축시키고 발빠르게 나아가야 할 정보화 투자마저 감소시킬 것이란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씩 늘어나는 빈 사무실, 구조조정, 정시 출퇴근제의 도입 등 요즘 테헤란밸리는 과거의 모습과는 크게 달라졌다. 한때 흥청대는 테헤란밸리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밤샘을 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밤낮으로 투자자들이 드나들던 과거의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뛰어난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하고 수주를 받아 놓고도 운전자금이 없어 밤잠을 설치는 벤처기업인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닷컴기업 거품론이 사실일지언정 옥석은 가려야 한다. 일부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와 거품이 전체 벤처기업의 부실로 평가돼서는 안된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많은 벤처다운 벤처기업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점이 인식돼야 한다. 분위기에 편승한 벤처기업 폄하주의는 결국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하는 새로운 원인이 될 뿐이다. 그래도 최근 국내자본이 벤처를 외면할 때 외국자본들이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요즘 부쩍 주주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온다. 다들 힘들다는데 별 문제는 없느냐는 전화에서부터 실적을 따져 묻는 전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맘이 편치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중에서 한 주주가 한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 사회는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 벤처기업은 한탕주의의 대상이 아니다. 벤처기업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다지는 데는 적어도 평균 2∼3년이 걸리고 정상적인 경영궤도에 진입하기까지 5년은 걸린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조급증이 벤처기업과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힘들지만 용기를 갖고 이겨내자.』

쓸쓸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이 늦가을, 그분의 한마디는 벤처기업 전체가 기다리는 말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