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디지털가전업계의 협력체제

MP3플레이어·인터넷TV·DVD플레이어 등 디지털가전 분야에서 기업간 공동협력체제 구축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의 경쟁자 관계를 청산하고 기술개발이나 마케팅 부문 등에서 상호협력함으로써 침체된 시장을 공동 활성화해 보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시장을 주도할 신제품을 개발하고도 국내 기업끼리 제살깎기 경쟁으로 실기하곤 했던 그간의 업계 분위기를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갈수록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모범사례로서 타분야에도 권장할 만한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간 협력체제 구축은 우선 기업간 모임을 활성화해 물적 토대를 갖춘 다음 업계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초기술이나 기반제품을 공동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주로 MP3플레이어업체들 사이에서 가시화되고 있는데, 이들은 일정한 금액을 각출해 멀티코덱플레이어와 같은 기반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것을 비롯, 주요 부품의 공동구매를 통한 규격의 표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장활성화를 위한 공동브랜드와 공동마케팅 전략도 주요 흐름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주로 인터넷TV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움직임으로서, 관련업체들은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산하에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통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십시일반의 노력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특히 공동마케팅을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공동 AS센터와 물류망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학교 등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동 납품하고 해외시장 역시 공동 진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같은 자구노력이 한창인 디지털가전업계는 일반 정보기술업계와 마찬가지로 벤처기업들이 대거 몰려있는 게 특징이다. 치열한 시장경쟁이 예상되고 있는 분야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라고 한다.

우선 세계적 추세인 시장 활성화가 지연될 경우 디지털가전업계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경쟁할 때 경쟁하더라도 우선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처기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막대한 초기자금이 요구되고 있다는 업계의 특성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제품 및 기술 표준화 과정에서 거대기업과 외국기업에 당당하게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포석도 업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디지털가전업계의 이런 노력은 한편으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당초 선풍적인 인기를 모을 것으로 예상됐던 디지털기기들이 소비자의 인식 부족 등으로 판매가 부진하자 이같은 자구책을 내놨다는 분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양상이 비록 임시방편적이거나 추진력이 의심된다 하더라도 이번의 경우처럼 시장의 주체인 기업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모습은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다양한 분야로 확산돼 국가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