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로 불리는 사회간접자본의 역할이 경제와 산업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잘 구축된 사회간접자본은 기업간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한편, 기업에 필요한 자원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공급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여준다. 100m 경주에 비유한다면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의 기업은 50m 앞선 출발점에서 경쟁하는 셈이니 그렇지 못한 환경에 있는 기업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좀처럼 이기기 힘들다.
우리는 그동안 나름대로 초고속통신망이나 벤처기업단지와 같은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주변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 보면 우리는 아직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의 반밖에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더구나 그 반은 훨씬 더 중요한 반쪽이며, 지금까지 구축해 온 방식처럼 빠른 시간내에 구축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한참 그 입구에 들어서고 있는 지식 및 정보사회에서는 부동산, 공장설비, 원재료와 같은 유형자산보다도 기업문화와 종업원에 내재된 기술, 기업경영시스템, 경영정보와 지식, 브랜드, 고객과 같은 무형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좌우할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기업경영에서는 복제가능한 무형자산의 성격을 잘 활용하여 동일한 자원을 여러 사업분야에 활용하는 「범위의 경제」가 기업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업가치의 생성구조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면 사회전체적으로도 사회간접자본의 구조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물류체계, 고속정보통신망, 산업단지와 같은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정보사회에서 정작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기업이 효율적으로 무형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프라의 구축이다. 나아가서는 거래관행과 제도,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태도, 정보 및 콘텐츠 생성기반과 같은 무형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로의 초점 전환일 것이다.
지금은 기업에 자금과 인력을 제공하는 직접적인 지원형태보다는 자본시장에 대한 다양화와 효율화, 장기적인 인력시장의, 기반구축, 상거래관행의 투명화와 합리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이나 제3시장은 기업주나 투자자의 한탕주의로 병들고 있다. 교육정책도 10년대계는커녕 3년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정보사회에서는 거래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고 또 합리적인 거래가 가능한 상거래관행을 중요한 무형 인프라로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하여 거래보장·인증·보안·보험에 수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거나 거래관계나 조건이 전근대적이고 투명하지 못하다면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최근 붐이 일고 있는 B2B마켓플레이스가 실제로는 잘 작동되지 않는 주요한 이유가 무자료 거래, 준비되지 않은 거래참가자, 변하기 어려운 기존 상거래관행과 같은 무형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라는 점을 볼 때에도 무형의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모두 부지런히 무형의 사회간접자본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실적지향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인프라 구축에만 신경쓰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기업은 거래상대방을 진정한 협조자로 생각하며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관계구축에 힘썼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며, 소비자는 무리한 요구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기업을 멍들게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을 새로이 구축하는 것은 방법을 찾기도 어렵고 또 단시일내에 이루어지지도 않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저절로 되기까지 기다리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나 기업, 소비자 모두 디지털경제에 필요한 새로운 규칙과 관행으로 스스로를 탈바꿈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무형 사회간접자본을 혁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