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이야기할 때면 중국·미국 등 제3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의 역할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들을 잘 이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북한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 지역적으로 붙어있고 같은 공산국끼리 그동안 교류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남한에서는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서 직접 북한과 접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이후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아직 마음대로 북한의 단체와 주민을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통한 북한과의 접촉은 중국이 개방되고 난 후에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남한 정부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시기였으므로 주로 학술회의같은 민간단체의 접촉이 많이 이루어졌다. 비록 그것이 남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업일지라도 철저히 그 행사의 주도는 민간단체가 앞장 서 왔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 교포들은 개방 이전에는 남한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중국이 개방되고 난 후에 남한과 같은 잘 사는 나라가 자기의 또다른 조국이라는 것에 많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그러한 긍지나 자부심은 중국 교포에게 은근한 경제적 혜택에 대한 기대감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필자가 중국 연변을 방문한 것은 1994년 여름이었다. 남북한 및 중국이 공동으로 개최한 「코리안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본 중국 교포들의 심성은 30년 전 어렸을 때 우리가 친지들에게서 느꼈던 따스함,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한에서 주도한 학술대회같은 모임을 보고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변해갔는가. 중국과 남한의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행사 잉여금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제 중국 교포들은 통일을 위한 순수한 차원에서 남한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행사를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주고 북한 인사들을 초청해 모양새를 맞추어주고 더욱 그럴 듯한 행사로 진행하기 위한 보답으로 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누구는 얼마를 받고 팔자를 고쳤는데 왜 이것 밖에 주지 않느냐는 협상이 오고가기도 한다. 이것은 통일 전초사업을 위해 드는 비용 부담의 차원이 아니다. 분명 상업적 장사다.
이같은 변화에는 남한에서 행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남한에서 모든 것을 무릅쓰고라도 일을 성사시키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야말로 통일을 위한 전초사업이라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장사가 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사가 가능한 것이다. 중국에서 학술대회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게 된다. 참석자들은 백두산도 한번은 봐야 하고, 북한 사람도 어떻게 생겼나 한번 보고 싶어질 것이다. 운이 좋아 북한 사람들이 참석한다면 그것은 금상첨화다. 북한 인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북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에서의 남북한간 여러가지 행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통일 전초사업으로서 중국에서 벌이는 행사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북한을 불러내 대화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 접근은 멀리하고 행사 자체가 상업적 목적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 벌이는 통일을 위한 전초사업, 그것은 좀더 순수한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제 북한과의 경제적·사회적 교류는 급류를 타고 많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북한과의 접촉에서도 재현되어 통일이 목적이 아니라 장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