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인사정책 상반된 행보

국내에 진출한 통신 관련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최근 서로 상반된 인사정책을 시행,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모토로라코리아 등 국내 진출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은 최근 외국인 대표를 한국인으로 교체하는 등 현지화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 반면 지난해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한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노텔네트웍스 등은 외국인 대표나 부사장을 임명하는 등 본사의 입김을 강화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토로라코리아는 지난달 중순 임기를 마친 개인휴대통신사업본부장인 조지 터너 회장을 대신할 한국법인 대표로 오인식 부사장을 선임했다. 모토로라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이는 각 국가 지역사업장의 수장에는 현지인이 적합하다는 모토로라 본사의 방침에 따른 것으로 모토로라는 현지화를 항상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모토로라코리아는 총 13개 사업부문을 갖고 있는데 이중 3명만이 외국인이다. 특히 오인식 대표는 국내 법인대표로는 드물게 모토로라 본사 차원의 부사장에 임명됐다.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도 지난 15일 데이비드 앨런 회장을 대신해 양춘경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양춘경 사장은 지난 90년부터 94년까지 LG와의 합작사(전 LG정보통신)에서 수석부사장급 공동대표이사직을 역임하는 등 한국 실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이상빈 사장, 김홍진 부사장, 홍기훈 부사장 등 대부분의 요직에는 한국인을 기용, 현지화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토로라코리아·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 등 양사는 20년 넘게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해왔으며 국내에 공장을 뒀거나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한국인에게도 친밀한 이미지를 심어왔다.

반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0%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해온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는 점차 본사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시스코는 한국인 사장·부사장을 통해 한국 내 사업을 총괄하게 했으나 올해 초 톨스텐 부사장을 임명, 영업을 맡긴 데 이어 다시 미국 본사에서 조매끼씨를 영업총괄부사장으로 내려보냈다. 이는 시스코의 인사정책인 조직이 커가면서 이를 분담시키는 「그로 앤 디바이드(Grow and Devide)」라는 독특한 인사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이나 하필이면 「디바이드」를 외국인에게 맡겼냐는 내부 불만의 소리도 높다. 조매끼 부사장은 전체 영업을 총괄하고 톨스텐 부사장은 통신사업자 영업을 맡고 있어 실질적인 영업 활동은 이 두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셈이다.

노텔네트웍스도 지난 7월 그동안 한국법인 대표 역할을 수행해왔던 정수진 사장을 대신해 아시아 부사장인 존지마테오가 한국법인 대표도 병행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대해 노텔 측은 『한국법인의 위상이 부상하면서 본사의 지원을 최대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조만간 현지인 대표체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시스코와 노텔의 이런 인사정책에 대해 『그만큼 국내 통신업계가 인물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지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반증』이라며 씁쓸해 하는 모습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