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캐피털<15>
여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요정에 갔다. 내가 단골로 가는 집이었다.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하였다. 비워놓은 방에 들어가 있는데 정확한 약속시간에 맞춰서 그녀가 들어왔다. 여자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저번에도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검은색을 좋아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자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차가 많이 막히지요?』
『그래서 조금 일찍 나왔어요. 다행히 약속시간을 지키게 되었네요.』
『요즘 운전기사는 차가 막히는 것에 대응해서 소요되는 시간을 짐작하지요. 특히 시간대로 막히는 추세라든지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지체된다는 것을 압니다. 보통 택시기사들이 그 감을 잡는데, 약속시간을 대야 하는 벤처기업 기사들도 그런 센스를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운전기사가 유능하군요.』
『앉으세요. 이곳은 내가 자주 오는 단골입니다. 이 집은 내가 관련되어 있는 학생 장학재단을 후원해 주는 곳입니다. 수익의 일부를 장학재단에 내놓지요. 오 여사님도 가급적 이 집을 이용해 주십시오.』
『어머, 그래야겠군요. 최 사장님이 장학재단을 운영하세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동향의 기업인 이십여명이 모여서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
『사회로부터 벌어들인 돈은 다시 사회로 환원해야겠지요.』
『그렇게 하지 않는 기업가가 더 많아요.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에요. 나 역시 이번에 하는 사업이 제대로 성공해서 돈을 벌면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처음에 마주앉아 형식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빛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저번과 다른 분위기였다. 상당히 요염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렇게 꾸민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투사 권영호의 말처럼 이 여자의 사업에 투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우를 해야 했다.
우리는 음식이 들어오기 전에 따뜻하게 데운 정종을 마셨다. 여자는 술잔을 비우고 빈 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우리는 잔을 주고받으면서 술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