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전자정부법

이상희 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한나라당(http://rhee.greenopia.or.kr)

세계는 이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패러다임의 이동(paradigm shift」)이 완료됐다. 이 같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우리나라의 국가 조직체계도 변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국회는 현재 국가기관의 전자정부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행정자치부가 마련하고 있는 「전자정부법(안)」과는 개념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정부 전체를 하나로 생각하고 개별업무 정보화 차원을 넘어서 국민들에게 하나의 정부 창구를 제공하는 국가전산망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개별기관·개별업무의 정보화 진척도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나 전자정부에 필수적인 국가기관간·업무간 장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자정부 추진은 범정부간 조정·협조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재정경제부 장관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국무총리 산하 정보화추진위원회는 현재 위원 모두가 각 부처의 장관으로 구성돼 국무위원과 동일한 실정인데다 정보화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전담 추진조직조차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자치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전자정부법안은 행정자치부가 추진 주체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행정부 내 부처간 이기주의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경우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전자정부는 총무청에서, 초고속망은 우정성에서, 교육망은 문부성에서 하는 식으로 정보화 추진조직이 나뉘어 있어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국가전산망 일원화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다.

세계가 글로벌화하고 국가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한 나라의 모든 국가기관을 하나로 묶는 원스톱·논스톱 행정서비스는 오히려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그리고 전자정부에 관한 내용들이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서 독자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많은 부분의 혼란과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정보를 전략적 자원으로 가공·현행화해야 하며 개인 사생활과 공공이익 우선 보호를 위해서는 행정정보관리의 전략적 통합화와 체계화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 같은 전자정부를 추진함에 있어 지금까지의 정보화사업과 상당부분 중복될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부 및 각 부처간 정보화추진단의 역할이 큰데 행정자치부가 그러한 모든 추진 주체를 끌어모을 경우 총무처와 내무부를 합친 거대 행자부가 새로운 공룡 같은 초거대 조직이 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그 아래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정보센터 설립과 운영까지 맡긴다면 실로 엄청난 행정조직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부처간 이기주의를 막고 진정한 민의를 모으는 국회가 추진 주체로 남음으로써 거대화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정부 스스로 개혁하는 과거의 모습을 보면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조직혁신적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아마도 이런 큰 의미의 전자정부 구현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맡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앞으로는 국민들이 국가기관 합전산망을 통해 입법감시·행정감시·사법감시를 적극적으로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즉 행정부가 전자정부화하면 예산감시 활동,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 개진뿐만 아니라 행정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는 등 국정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입법부가 전자정부화하면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원회의 의사진행을 생중계하고 의정자료를 공유함으로써 의정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은 물론 감시할 수 있는 전자민주주의시대가 열릴 것이다. 사법부 역시 전자정부화를 통해 전자법원이라고 할 수 있는 원격영상으로 피의자 심문을 하거나 참고인을 조사할 수 있으며 수사자료 및 관련행정자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신속한 재판이 가능함은 물론 불필요한 인권남용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