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업을 자부하는 한글과컴퓨터가 정체성에 일대 혼란을 겪고있다.
최근 메디슨이 자사 보유지분 중 일부를 싱가포르의 싱텔 자회사인 비커스펀드에 매각함에 따라 TVG·비커스펀드·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지분이 전체의 16%선에 육박, 사실상 경영권이 외국계 기업에 넘어간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한컴측은 외국계 기업에 상당 지분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지분의 75%를 일반인이 소유하고 있다며 한컴이 국민기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컴의 정체성 위기는 단지 지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컴이 지난 10월 숱한 우여곡절끝에 내놓은 새로운 워드프로세서 버전인 「워디안」의 기능을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컴측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에 나서고 패치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워디안에 대한 사용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한컴이 장기적인 비전하에 의욕적으로 내놓은 하늘과사랑과의 합병, 교육 및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업으로의 재탄생 등 청사진들이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려 멈칫거리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보는 일반인의 시선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특히 과거 한글과컴퓨터가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던 일반 국민은 최근의 사태를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연 한글과컴퓨터가 이같은 정체성 위기를 잘 극복하고 외국계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득실거리는 국내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자존심이라던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명분과 실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등 만감이 교차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글과컴퓨터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국민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분명 한컴의 지분이 외국계 기업에 일부 넘어갔다고 해서 한컴이 외국계 기업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기업이라는 수식어를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해석했든간에 이제는 한컴이 국민기업이라는 족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진정한 시장의 논리와 경영방식이 한컴과 같은 국민기업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면 우리가생각하는 국민기업의 외연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