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통업계 새바람

최근에 국내 벤처의 최고경영책임자(CEO)와 다국적기업의 국내 대표를 함께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비교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 국내 벤처 사장에게 다국적기업 사장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적지 않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우려의 요지는 토양론이었다.

『미국의 벤처기업은 물만 주면 자라나는 옥토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벤처는 돌뿐인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곡물과 같다. 과연 해외 시장에서 성장 배경이 180도로 다른 두 기업이 경쟁을 하면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하는 걱정이었다.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옮긴 지 1년이 조금 넘는 한 관계자는 『아직도 벤처를 시작해보려는 후배나 친구들이 많다』며 『그러나 막상 만나서 벤처업체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여러 꺼림칙한(?) 행동들을 얘기해주면 대부분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토로했다.

최근 발생한 「정현준 게이트」나 「진승현 게이트」 때문에 벤처업계의 도덕성에 금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그들은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벤처기업가는 아니지만 벤처투자자라는 측면에서 대부분의 선량한 벤처기업가들이 싸잡아 비난받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은 무엇일까. 엔젤투자가를 비롯한 체계적인 투자시스템, 첨단기술과 풍부한 기술 인력, 그리고 모험정신 등 다양한 요소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투명한 사회다. 제품만으로 평가받는 풍토, 소위 지연·학연·사(社)연으로 얽매이지 않는 사회가 벤처가 성공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아닐까.

아직도 주위에서는 이런 연줄잡기에 성공해 매출이 급성장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지금도 많은 벤처 사장들은 수요처 실세와 연을 맺기 위해 분주하게 다니고 있을 것이다.

제품 개발과 기획에 전념해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벤처기업가들을 대외 활동으로 내모는 사회 풍토에서 벤처 성공신화는 요원할지도 모른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