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춘기 한국전자게임산업협동조합 이사장 webmaster@kega.or.kr
한국 아케이드게임 산업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댄스 시뮬레이션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이후 전세계로 한국 게임이 수출되고 있으며, 각종 세계 게임전시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술력이나 아이디어 면에서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 게임업계가 용트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정부가 게임을 「첨단산업」으로 인식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많은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게임산업의 모법인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게법)이 현실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어 문제다. 현행 음비게법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를 규정하고 있으며 게임의 사행성에 대한 현실적이 못한 규제로 가득차 있다. 게임을 이용해 사행 행위를 하는 사람을 규제하고 처벌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음비게법은 게임 자체만으로 사행성을 논의하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은 특히 아케이드 게임기에 대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심의로 이어져 업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영등위의 등급보류 판정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영등위는 국내에서 개발한 게임의 50% 이상에 사행성이 있다는 이유로 등급보류 판정을 내리고 있다.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각 업체에서는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크게는 수억원의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어렵게 만든 국산 게임기의 절반 정도가 영등위의 등급보류 판정으로 시장에 출시되지도 못한 채 사장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게임 개발자들은 심의를 염두에 두고 게임을 개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며 이런 현실이 계속된다면 게임강국 코리아는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영등위의 필증제도도 문제다. 심의등급을 표시하는 필증의 부착을 의무화함으로써 관련업체들이 시장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시간과 경비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영등위는 사전심의와 필증제도로 인해 1년에 수십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이러한 수입금이 아케이드 게임업계에 대한 지원보다는 영등위 직원들의 인건비나 기타 비용으로 소비되고 있다.
영등위의 심의위원이 비전문가 일색으로 구성되는 것도 문제다. 현재 등급분류 위원 중에는 아케이드 게임업계의 전문가가 단 한명도 없다. 하나의 게임을 심의할 때 그 게임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업계 전문가가 포함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이 개정돼야 한다.
그동안 아케이드 업계에서는 영등위의 심의제도를 대대적인 개정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밝혀왔다. 하지만 문화부는 이를 무시하고 기존 심의제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개정안을 내놓고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아케이드 게임기 업체들의 권익 단체장으로서 필자는 이 자리에서 영등위의 등급보류가 폐지돼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밝힌다. 전세계적으로 국내에만 존재하는 제도일 뿐 아니라 관련 업계의 목을 죄는 독소 조항인 만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폐지돼야 한다. 등급보류제도가 계속된다면 정부의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게임강국 한국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음비게법이 제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회장 자리를 걸고서라도 다방면에 걸쳐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아케이드게임 업계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문화부도 필증제도 폐지와 사전심의 완화, 명확성과 형평성을 갖춘 등급분류 기준제시 등은 결코 몇몇 업체의 이익만이 아닌 게임업계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전향적으로 개정을 추진해주길 바란다. 더 이상 업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법개정은 한국 게임산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을 명심하고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게임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음비게법을 개정하기 위해 이제라도 중지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