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정선종)과 한화/정보통신이 정부의 초고속 통신장비 개발과제(한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93년부터 수백억원의 개발비를 투입, 최근 개발을 마친 160기가 고밀도파장분할다중화(DWDM) 장비의 상용화가 불투명하다.
대다수 국내 장비업체들이 시장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술이전을 받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광통신 장비가 향후 10년간 이동통신 분야에 이은 거대 시장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국내 산업계가 처한 상황을 냉철히 분석해야 한다』며 『정부가 향후 대규모 투자를 집행키로 한 광인터넷 육성방안을 현실성 있게 재검토하지 않고는 세금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 외면하나 ● 산업계에서는 우선 국내 시장마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주로 서울과 대전 등 도시간 대규모 음성·인터넷 신호교환에 이용되는 DWDM 장비는 올해 초만 해도 40기가급 제품이 주류였으나 초고속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올해 중반부터는 320기가급이나 400기가급 장비가 대거 채용되는 추세다. 최대 수요처인 한국통신도 내년에는 320기가급이나 400기가급 장비를 채용할 방침이다.
기술이전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빠르면 내년 하반기에 160기가 WDM이 상용화할 수 있지만 시기적으로 이미 늦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또 국설교환기(TDX)와 같이 예전처럼 정부가 나서서 수입제한이나 지원금 같은 보호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업계가 주저하게 되는 요인이다.
수출 가능성도 극히 미지수다. 한빛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2.5기가 동기식 디지털계위(SDH) 장비나 10기가 SDH 장비 모두 수출이 전무한 상태. 우선 성능상의 제약도 있지만 무엇보다 핵심소자를 수입하는 구조여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60기가 WDM 제품도 광송수신 모듈과 같은 핵심부품은 모두 수입해야 하는데다 납기도 6개월가량 소요되는 등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취약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판단에 따라 어느 대기업도 최소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160기가 WDM 장비 개발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공동개발업체이기도 한 한화/정보통신 측도 『아직 최종 결론은 내리지 않았지만 시료 개발에만 70억원이 소요되는 등 부담이 너무 커 고민중』이라며 『아무래도 투자가 버겁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밝혔다.
올해 16채널 40기가 DWDM 제품을 선보인 삼성전자는 『선택과 집중 면에서 장거리 DWDM 장비 분야는 삼성이 세계적인 플레이어가 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라며 『기본 광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접근을 시도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40기가 제품을 출시하고도 아직 국내에서조차 한 대로 판매하지 못했다.
이밖에 LG전자·머큐리 등도 기술이전을 검토중이나 자체 제품 개발일정과 겹치고 개발비 부담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향후 과제 ● 『광통신 기반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신뢰성·가격경쟁력 모두 이류다.』
업계가 바라보는 국내 광통신산업의 현황이다. 즉 가능성은 있지만 효과적인 육성책이나 산업계의 대단위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반마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우선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처방이 마련돼야 한다』며 『노텔·루슨트 등 경쟁업체로부터 핵심소자를 수입하는 구조 하에서는 영원히 이류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시료 제출에만 수십억이 투자되는 만큼 통신사업자들도 신제품의 경우 공동시료를 제출하도록 시험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DWDM란
고밀도파장분할다중화(DWDM) 장비는 하나의 광케이블상에서 여러 개의 빛 파장을 동시에 전송하는 광전송 장비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광케이블에서는 하나의 빛 파장을 이용해 2.5Gbps, 10Gbps의 전송속도를 제공하지만 40채널 DWDM 방식을 이용하면 40개의 서로 다른 파장을 이용, 하나의 광케이블에서 최대 100Gbps, 400Gbps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