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MF악령 되살아나나

경제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철없는 사이비 벤처금융인들에 의한 연이은 금융사고와 정부의 미지근한 현대건설 처리, 그리고 국회파행 등으로 그동안 우려됐던 경제위기론이 피부로 다가오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한보·기아사태로 얼룩져 결국 국가파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온 문민정부의 마지막과 흡사한 경제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IMF 탈출에 크게 기여해 온 외국계 투자사들의 자금이 뭉치로 빠져나가고 있는가 하면 3년전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외국기업들이 앞다투어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외상값 독촉에 나서고 있다. 국가신뢰도가 이미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징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의 통신업체인 에릭슨사의 태도다. 최근 한국통신이 건설중인 국제관문국의 통신설비 대금을 당초 계약과는 달리 조기 해결해 줄 것을 통고해 마찰을 빚고 있다. 쉽게 얘기하면 외상 대신 현찰을 달라는 얘기다.

물론 한국통신은 계약상의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지만 에릭슨측은 설비 추가공급 중단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상황을 볼 때 3년전 제2의 IMF사태가 올지 모르고 그럴 경우 대금을 회수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냉정한 기업적인 분석에서다.

그동안 우리나라 유선통신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렸던 에릭슨사가 이렇게 태도를 돌변한 것은 한국이 더이상 시장매력이 없는 데다 한국정부의 일련의 경제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 에릭슨사의 이같은 태도는 빙산의 일각일 뿐 이미 많은 외국기업들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투자가들이 아닌 외국 제조업체들의 한국 기피증은 우리 경제가 매우 심각한 사태에 이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경제위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안이하게 땜질식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3년전의 경제악몽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느낌이다. 재벌에 대한 냉정하고 과감한 개혁과 공기업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만이 경제위기에 몰린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경제과학부·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