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미국 퀄컴사로부터 받아온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에 대한 로열티 비율이 현재의 11%에서 20%로 껑충 뛰어오르게 됐다고 한다. ETRI가 퀄컴에 대해 제기한 로열티 소송에서 국제상공회소 산하의 국제중재재판소(ICA)가 ETRI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동안 통념상 외국기업에 지급하는 줄만 알았던 기술 로열티를 반대로 우리나라 기관이 받게 됐다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이번 사건은 또한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뿐만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받는 로열티에 대한 개념이나 그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ETRI가 지난 92년 퀄컴과 맺은 계약내용 가운데 『퀄컴이 CDMA기술을 채용한 한국의 통신장비업체로부터 로열티를 받되 그 가운데 20%는 ETRI에 지급한다』라는 조항에 근거, 내려진 결과다. ETRI는 또한 이번 결정에 따라 그동안 지급받지 못했던 9%에 대한 로열티 차액 8000만달러도 함께 돌려 받게 됐으며 20% 지급비율은 오는 2006년까지 유효하다고 한다.
ETRI는 제2세대 이동전화에서 통용되고 있는 CDMA기술을 상용화 수준으로 이끈
주역이며 상당수의 관련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CDMA기술 전문연구소다. 그러나 CDMA 원천기술 소유권자인 퀄컴은 ETRI의 역할과 기술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800㎒급 셀룰러 방식 이동전화단말기 분야에 국한된 로열티만을 지급해 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CDMA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PCS 방식 단말기와 무선교환기에 대한 적용분 9%는 지난 8년간 단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비록 ICA의 힘을 빌기는 했지만 ETRI가 이번에 잃어버릴 뻔했던 9%분의
로열티를 되찾게 된 것은 그 액수의 규모를 떠나 ETRI의 역할이 CDMA상용화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만방에 드러내준 쾌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ICA의 이번 결정은 또한 그동안 국내 통신장비업계가 퀄컴측에 제공해온 막대한 로열티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해준다.
한편 이번 사례는 그동안 우리가 외국과 주고 받은 로열티 개념이나 관행을 재고해보는 계기를 제공해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하겠다. 각각의 이유가 존재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외국으로부터 지급받는 로열티의 경우는 그 액수가 너무 보잘것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상징적으로 처리해버리거나 대외 과시용으로 치부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번 ETRI건도 오랫동안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그냥 묻혀버릴 일이 었음은 물론이다.
주지하다시피 특허기술이나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는 오늘날 가장 확실한 국가경쟁력이며 기업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번 ETRI의 사례를 거울삼아 우리의 로열티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