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승부의 종착점을 눈 앞에 둔 IMT2000 예비사업자들은 초조하게 선정결과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업의 진퇴는 물론 그룹 차원의 흥망이 걸린 탓에 이들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발표 직전까지도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윤곽조차 어림잡기 어려울 정도로 정부가 극도의 보안을 유지, 이들의 긴박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업자 선정은 사업권 티켓을 거머쥐는 기업이 누가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탈락하느냐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일종의 역발상이지만 국내 통신시장 판세 전체를 놓고 볼 때 탈락하는 기업이 어디냐에 따라 앞으로 초래될 파괴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 역시 숨죽이고 있다. 언뜻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사업자 선정결과에 따라서는 지난 6∼7년간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경쟁 활성화를 통한 자생력 확대」라는 정책기조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는 탓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통신이나 SK텔레콤이 떨어지는 것보다 LG글로콤이 탈락하는 경우 국내 통신시장이 훨씬 큰 폭으로 요동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통신이나 SK텔레콤은 이번 사업권에서 배제되더라도 다소간의 기업가치 하락을 감수한 채 통신사업을 지속할 수 있지만 LG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 한통이 탈락한다면=한국을 대표하는 기간통신사업자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가뜩이나 무선 강세에 밀려 유선부문의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는 판에 IMT2000시장에 뛰어들 기회마저 원천봉쇄된다면 자칫 「공룡」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한통은 국내시장 완전 개방시 NTT, BT 등 세계 거대기업과 안방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대표주자인데 이번에 탈락한다면 경쟁력이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민영화 작업도 기업가치 하락으로 일정 부분 진통이 불가피해 질 것이고 현재 진행중인 인력감축 작업도 노조의 저항에 부닥쳐 험로를 걸을 것이다. 한통은 IMT2000사업권 획득을 전제로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며 퇴직인원들에게도 적당한 보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통의 위상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 거꾸로 급속한 구조조정 단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한통의 자금력과 기술력, 시장 지배력을 감안할 때 동기식으로 선회하든 아니면 사업권을 따낸 기업과의 지분 제휴에 나서든 이 시장에 참여할 여지는 열려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SKT가 떨어지면=당장 일본 NTT도코모와의 지분 매각협상이 차질을 빚게 된다. 차이나모바일까지 엮어 한-중-일 제1위 사업자들과의 완전 로밍 구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세계시장 진출 계획도 헝클어질 가능성이 높다. SK가 가장 피해 가고 싶은 주가 하락이라는 「폭탄」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SK가 곧바로 시장 퇴출이라는 극한 상황을 맞을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는 한명도 없다. 이동전화시장에서의 지배력이 워낙 공고해 향후 2∼3년간은 끄덕없이 이익을 창출해 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부 외국계 증권 전문가들은 SK가 탈락하더라도 동기 사업기회가 남아 있어 주가 하락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의 탈락에 따른 충격파는 당초보다 크지 않을 것이며 이들이 통신사업을 계속하는 한 정부의 정책기조인 「경쟁 활성화」도 성공적으로 유지돼 정책 당국자들도 한 숨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소비자들 역시 경쟁체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 LG 탈락은 =엄청난 시장 충격이다. 혹시 동기로 전환한다 해도 현 3위 사업자가 혼자서 동기로 가면 자생력 확보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경우 LG는 그룹차원의 결단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대충 세가지 대안이 유력하다. 아예 통신사업 전체를 포기하거나 서비스부문(LG텔레콤, 데이콤, 하나로통신)은 일괄 매각한 채 장비에만 전념하든지, 장비와 서비스사업을 병행 유지하는 방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LG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장비에 주력 혹은 통신 포기카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LG가 서비스부문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한다면 국내 시장은 판 자체를 다시 짜야 할 정도의 메가톤급 구조조정 폭풍에 휘말릴 것이다. 지금도 후발주자들의 수익성이 불투명,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고 있는 판에 LG몫까지 시장에 나온다면 대대적인 구조 재편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라는 양강이 국내 통신시장을 독과점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자연히 정부가 지난 수년간 추진해 온 정책기조도 시장의 힘에 의해 허물어지게 된다. 정부로서는 혹을 안게 되는 셈이다. 소비자들 역시 비록 난립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한때 경쟁체제를 즐기다가 다시 독과점으로 퇴행하는 「시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