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564) 벤처기업

벤처 캐피털<35>

한라DNA닷컴이 부도나기 이틀 전에 창투사의 본부장 권영호가 한 보따리 자료를 들고 파나마로 날아왔다. 그때 나는 파나마 운하의 갑문에 장치할 자동제어시스템을 팔기 위해 그곳에 가 있었다. 그동안은 미국의 제품을 쓰고 있었으나, 가격이 비싸고 고장이 잦았다. 자동제어 장치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것인 만큼 그들은 영준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쓰기로 했던 것이다.

파나마 운하가 보이는 국제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권영호와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서류를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DNA닷컴에서 부도 위험이 있다고 12억원을 2차 투자해 달라고 합니다. 채권 주식의 형태로. 그러나 그동안 진척된 것을 보면 앞으로 언제 제품이 완성될 지 의문입니다. 1년 후면 가시적인 일부 제품이 나온다고 했지만,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 학자들을 끌어들여 막대한 연구비만 나가고 있었습니다. 막대한 연구비가 나간다고 하지만, 한해 반 동안 100억원이 소모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00억원이라니? 우리가 준 것은 50억원이잖아?』

『은행에서도 빌리고 다른 창투에서도 빌렸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농간이 있는 듯합니다. 고의부도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감사는 우리 사람이잖아. 감사 보고에는 그런 일이 없잖아.』

『속이기로 말하면 회계 감사를 속이는 것도 간단합니다.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빼돌린 것이 분명합니다. 12억원을 주면 날릴 것입니다.』

『그 여우 같은 오 사장이 원하는 것은 뭐요?』

『12억원을 넣어서 살리지 못하면 우리가 투자한 50억원을 날린다는 논리로 압박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쪽에 투자한 은행이나 다른 창투사 쪽의 의견을 들어보았나?』

『그쪽들도 모두 더 이상 댈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처음부터 사장님의 판단에 의해서 된 것이니까, 따르겠습니다. 12억원을 주어서 이 고비를 넘겨볼 수도 있습니다.』

권영호는 나의 말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은근히 나의 실책을 책망하고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도 더 이상 투자할 수 없소. 그렇게 되면 한없이 끌려갈 수 있어. 다시 또 손을 벌리게 되겠지. 그런 회사는 우리가 인수해도 계속 끌고 나갈 수 없지 않소. 그러니 이 단계에서 손을 떼야 할 거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내가 가장 비싼 돈을 주고 여자를 가졌던 그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