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두레 정신과 벤처 컨소시움

정태헌 (주)비진 사장 thjoung@bzin.co.kr

우리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고귀한 정신 중에서 두레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두레란 일손이 부족했던 시절, 농사꾼들이 모내기·김매기를 공동으로 협력하기 위한 모임이다.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일손이 부족한 농가 일을 돌아가며 해소시켜 주었고, 서로 노하우 전수는 물론 땀 흘린 후 두렛상을 통해서 마을 울타리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장이 되어 마을의 대소사를 자연스럽게 논의해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국가 전체로 이어져 농업발전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즉 두레를 통해 물리적인 힘의 협력과 정보를 공유하므로써 농사방법의 발전모색과 그것들의 근간이자 결실인 정과 공감대의 형성을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데 부족한 면을 협력을 통해서 해결하는 지혜를 물려주었다.

구미 선진국에 전략적 M&A가 있다면, 우리 한국에는 아름다운 두레가 있다.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이비 벤처업체들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벤처기업 전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한국 고유의 두레정신을 벤처기업이 이어받아야 할 때라고 판단된다.

두레정신을 효과적으로 적용·발전시켜 벤처 생태계에 경쟁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기업별 요소기술 강화와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는 생태계 전반에 활력과 믿음을 주어야 한다.

무분별하고 대책 없는 M&A, 전략제휴, 합병소식과 결별소식이 오고가는 지금의 벤처업계에 어떻게 두레정신이 적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

첫째, 요소기술에 대한 경쟁우위를 가지고 효과적인 시장창출을 목적으로 모여야 한다. 벤처기업의 특징은 각자가 보유한 핵심기술과 인력을 기반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지만 경쟁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과 관련된 분야의 기업들과 컨소시엄의 구성 등을 통해 관련사업의 경쟁우위에 서도록 하는 시장분석력과 기민한 추진력, 철저한 사업화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은 농사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역할분담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기술에 대한 교류뿐 아니라 실질적인 인력·자금·마케팅의 교류로 확장돼야 한다. 즉 가뭄 때 이웃 논에 물을 대는 것, 홍수가 날 때 물길을 열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수한 기술로 경쟁력 있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으면서도 생산비가 없어 시장에 선보이지도 못하고 사장되는 일이 주변에 속출하고 있다. 이것은 한 기업의 몰락이라는 안타까운 현실보다는 국가경쟁력의 기회상실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당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합체를 결성하고, 상호 신뢰와 정을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진토록 해야 한다. 정부도 이들 기업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어렵게 이끌어낸 벤처기업들의 개발력과 응집력을 국가발전에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두레모임의 뿌리이자 열매인 정과 공감대의 형성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벤처가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것처럼 국민을 선도하던 모든 지식인들은 오늘은 옥석을 가리자고 난리들이다. 한 분야의 발전과 기업의 자생을 위해서는 기반을 조성하고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기가 필요하다. 일부 가짜 벤처들의 부도덕한 행태로 인해 벤처업계 모두가 매도당하는 현실에서 다시 믿음을 찾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의 피나는 노력과 결과의 도출이 필요하며, 국민 모두가 믿음을 바탕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협동심은 새참이 오면 막걸리 한 사발에 마을사람 모두가 피곤을 풀고 마을 이야기를 꽃피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서로 믿음과 성취감을 통해 하나되는 마음이 필요하다.

벤처가 기술과 창의 그리고 도전의 융합이라면 하나를 더 추가해 가장 한국적이고 또 전통적인 두레정신을 살려 오늘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