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중소ISP 초토화 우려

초고속인터넷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지방도시의 군소 인터넷서비스업체(마이크로ISP)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시장초토화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서울의 대형 초고속인터넷사업자의 지방대리점 역할을 하며 실질적인 가입자 모집에서부터 설치, 사후관리까지 도맡아 처리하던 이들의 붕괴는 연내 초고속인터넷가입자 400만명 돌파라는 화려함 뒤에 가려진 부정적 모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느 정도인가=네티존 부도 이후 시장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싸이홈·스피드로 등 그래도 이름값을 하던 전국사업자들이 줄줄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지방사업자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의 가입자 및 대리점의 피해가 심각했고 도별 중심지가 되는 도시들은 하나같이 사업자 도산에 따른 가입자 피해가 줄을 이었다.

현재 대구지역은 A·B사의 현지 사업자들이 백기를 들고 이미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고 전남 광주·순천지역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또 강원 원주·강릉지역도 감자넷이 사업을 포기하고 가입자를 서울의 모 업체에 모두 넘겨준 상황이다.

특히 일부 지방의 신설아파트에서는 아파트통신실에 사업자가 렉까지 설치해두고도 주민입주 이후에 자취를 감추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지방의 마이크로ISP는 완전히 초토화됐다고 봐도 될 것』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이같은 상황이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과당 경쟁이 원인=가장 심각한 것은 업계 내부의 지나친 경쟁에서 기인한다. 대형 초고속인터넷사업자들이 월 평균 3만원 가량의 이용료를 받는 것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당에 이들은 2만원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제살깎기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특히 그동안 가입자 밀집도를 높이기 위해 전용선 공동사용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합리적 경쟁을 스스로 걷어찬 것 또한 사태의 심각성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두루넷·드림라인 등의 사업자들이 초고속인터넷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지방 마이크로ISP는 지탱점없이 공중에 뜬 꼴이 됐고 심각성을 인지했을 땐 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후였다.

아울러 실질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가입자장비에 대한 선투자가 필요하지만 관련 장비업계 또한 무한정 투자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팎의 자금압박을 받게 됐고 최근 경기악화는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책은 없나=시장 재생을 위한 인위적 대응은 의미가 없다. 대형 초고속인터넷사업자 이외에 시장기능에 의한 일부 부실사업자의 정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용자 보호대책 마련과 건전하고 공정한 시장형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다.

업계 전문가들은 초고속인터넷에 대한 중복투자 해소와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메이저급 사업자 이외에 모든 군소사업자가 전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련업체의 한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건전한 인수합병(M&A)을 고민해야 할 때며 사업성없는 일을 계속 끌고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보다는 발전적으로 뭉쳐 바닥에서부터 초고속인터넷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