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승자와 패자

올해 방송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였던 위성방송사업자 허가추천이 끝났다. 지난 5월부터 8개월간 끌어오던 사업자 선정작업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번 사업자 선정에서는 한국통신과 지상파방송사를 주축으로 한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컨소시엄과 데이콤 계열의 DSM이 주도한 한국위성방송(KSB)컨소시엄 등 2개 컨소시엄이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비방하는 각종 루머가 난무했으며 조직 내부의 갈등이 밖으로 표출되는 등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양측의 서로에 대한 감정도 나빠질 대로 나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최후의 승자가 결정됐을 때 허가추천권을 따낸 KDB 진영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였고 KSB 진영은 초상집처럼 침통한 분위기였다.

어떤 경쟁에서나 승자와 패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 다음의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어떤 경우는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불구대천지원수로 여기며 으르렁 거리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승자가 패자를 끌어안고 패자는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얼마전 시드니 올림픽 경기 펜싱 부문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국민은 두 번 감동했다. 하나는 역경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따낸 인간승리의 드라마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기에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자를 끌어안으며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던 2위 선수의 진정한 스포츠 정신 때문이었다.

과거는 흘러가는 시간이다. 이미 흘러간 과거에 집착하다보면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위성방송사업자 선정에서도 이러한 스포츠 정신이 발휘되길 기대해본다.

다행히 사업자로 선정된 KDB에서 KSB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인력, 장비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묵은 감정이나 사소한 대립은 더이상 문제삼지 않는 것이 승자의 미덕이요 패자의 자세일 것이다.

위성방송사업은 상업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개인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 사업자 선정에서도 이러한 점이 적극 반영됐다. 이제는 피아를 구분하는 소아적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방송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한 덩어리가 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