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사업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통일에 대한 희망이 증대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고, 앞으로도 많은 협력사업이 성사되어 통일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각자 주먹구구식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한다면, 어렵게 성사되었고 또 앞으로 성사될 경제협력의 사례들이 한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낭비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비능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 실행방안을 세우며, 실행방안에 맞추어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먼저 통일 전의 당면과제를 살펴보자. 과거의 남북한간 경협사례를 살펴보면, 한 기업이 북한과 경협사업을 추진하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기업들이 비슷한 사업을 모방하여 추진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이렇게 다수의 기업이 동시에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할 경우에는 독점적 지위에 있는 북한당국이나 독점권을 부여받은 외국기업?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즉 북한 쪽은 하나이고 남한에서 북한과의 경협을 원하는 기업체는 많기 때문에 남한기업들이 북한측에 비하여 불리한 상황에서 경협을 시작하는 것이다. 경제이론적으로 보면 북한측의 일방적 독점력이 존재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을 반영하듯 남한의 많은 기업들이 북한과의 경협사업을 추진하면서 북한당국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였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국민적 합의와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자금을 제공하더라도(또는 자금의 규모가 막대하더라도) 경협을 추진해야 한다고 동의한다면 별 문제 없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자금제공을 최소화하면서도 경협을 추진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고려할 수 있는 한가지 방안은 북한에 진출하는 남한기업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남한기업의 수가 제한된다면 북한당국이나 외국사업자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대상도 감소하기 때문에 남한기업의 협상력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경협을 위하여 제공해야 하는 액수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양방 독점 사업자 간의 협상이 예상되는데, 앞서 언급한 일방 독점 사업자의 경우보다 소비자(남한기업)가 경협이라는 상품을 얻기 위하여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감소하는 것이다.
다음 과제로 통일 후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통일시점에서 외국기업은 이미 북한당국으로부터 독점권을 부여받고 정보통신사업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나진과 선봉지역의 록슬리그룹과 같은 경우다. 이와 같이 통일 전 북한에서 남발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의무를 통일한국이 자동적으로 승계한다면, 통일한국은 북한지역에서 외국기업을 독점 통신사업자로 인정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가능성을 국민이 용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검토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용납한다면 별 문제 아니겠지만, 용납할 수 없다면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대책의 첫번째는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이와는 별도로 국제사회의 양해를 얻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북한지역에 대한 투자협정이나 독점사업권 등의 보장은 통일 전(또는 통일 후의 일정기간)에만 유효하다는 것을 WTO협상 등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WTO의 예외규정을 통하여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방법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만약 국제사회에서 양해가 이루어진다면 통일 이후의 사후적 비용과 충격을 극소화시키고 국제간 분쟁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