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의 개막이라는 기대속에 그 첫날을 맞이했던 때가 엊그제였다. 희망도 넘쳤고 그것에 비례해서 아픔도 많았던 한해가 마침내 저물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유사 이래 연초와 연말의 기대가 이렇게 상반되게 나타났던 해도 드물었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자정보통신산업 역시 IMF 구제금융 상황의 극복에 대한 기대로 한해를 시작했다. 연초부터 신산업이랄 수 있는 인터넷과 반도체시장이 큰 활황세를 보였고 이 쌍두마차가 이끄는 주식시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치솟았다.
전자정보통신산업은 또한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왔던 재벌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편하려는 정부의 개혁의지를 밑받침해줌으로써 21세기 한국경제를 이끌 간성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전자정보통신산업 중심의 벤처창업 열기가 테헤란밸리를 필두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전국에 확산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민족적 관심을 모았던 6·15 남북정상회담 역시 정치사회적 관심과 함께 남북간 경제협력·교류 분위기를 북돋움으로써 신규시장 개척에 목말라하던 업계에 또다른 희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고 성급했던 탓이었을까. 올봄부터 시작된 닷컴위기론이 전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주식시장은 큰 수렁에 빠졌고 사회와 경제 전반은 경색되기 시작했다. 수출전선의 첨병이던 반도체산업이 가격폭락으로 급랭하기 시작했는가 하면 이른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냉소는 벤처 붐을 뿌리째 흔들었다. 실업률 등 각종지표와 지수도 오히려 IMF 위기 때보다 더 악화돼 내년 상반기 경기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올 한해가 업계의 기대만 부풀린 채 성과 없이 지나가 버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불리한 여건속에서도 우리 전자정보통신업계는 그 특유의 뚝심과 집념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성장과 결실을 얻어냈다.
인터넷 인구가 200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확산됐는가 하면 21세기 정보사회 기반이 돼줄 무선전화 가입자가 2500만명을 돌파한 것 등이 그 좋은 예다. 그동안 인력투자가 집중되던 게임 분야는 고부가치 창출이 가능한 유망산업으로 부상했고, 전자상거래 분야는 예상외의 신장세를 보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잘 조화된 한국경제의 밝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세기적 역점사업이었던 차세대이동통신(IMT2000)과 위성방송사업이 예정대로 사업자를 선정한 것도 큰 성과라면 큰 성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업은 모두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큰 잡음 없이 마무리됨으로써 내년의 사업전개과정에 대한 또다른 희망을 걸 수 있게 해주었다.
지혜는 앞으로 다가오려는 것에서보다는 지나간 경험에서 찾는 법이다. 또한 경험이 쓰라리면 쓰라릴수록 지혜의 샘은 깊게 마련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송구영신의 때에는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고 잘한 일은 평가하며 못한 일은 반성하는 자세를 통해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는 마음가짐을 견지해왔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데 모두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풍족한 지혜의 샘을 만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