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계에 때아닌 「토사구팽」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중소 규모 DSL업계의 자금난이 계속되면서 일부 업계 전문가들이 『최근의 업계 위기는 단물만 빼먹고 버리려는 미 정부와 거대 전화회사들의 합작품』이라며 미국 정부와 전화회사들의 무책임을 비난하고 나섰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DSL사업 자체가 미 정부와 전화회사들이 미리 계획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는 음모론마저 제기하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의 DSL업계가 출혈경쟁 및 설비증설에 따른 자금압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날로 더해 가는 채산성 악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회사를 매각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사례마저 속출하고 있다.
한 때 코바드(Covad)의 파트너였던 스타넷의 러스 사장은 『수많은 중소 DSL업체가 도산하고 나면 남는 것은 각 가정에 번듯하게 깔려있는 초고속망뿐』이라며 『이를 이용해 정작 수익을 올리는 것은 대형 전화회사들일 것이며 결국 투자자들의 돈으로 전화회사들의 주머니를 채워준 셈이 됐다』고 성토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수년동안 미국의 DSL사업자들에게 갖은 압력과 회유를 통해 미국 전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에 동참하도록 강요해온 것이 사실. 일부 업체들은 DSL사업을 차세대 「황금알 사업」으로 인식하고 앞다퉈 달려들기도 했다.
그러나 업체들간의 과잉경쟁으로 사용료가 크게 인하된 데다 설비증설에 따른 막대한 자금부담까지 겹치면서 심한 경영난에 빠져들었고 현재는 폐업을 기다리고 있거나 대형 전화회사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상황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생 업체들이 문을 닫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DSL사업은 규모가 큰 전화회사들의 각본에 의해 이뤄진 하나의 게임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코바드와 노스포인트(NorthPoint) 등 작년까지만 해도 떠오르는 샛별로 각광받던 DSL업체들은 한때 미국 통신업계를 재편성할 수도 있다는 찬사를 받으며 품질 좋은 DSL선로를 구축해왔지만 지금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는 대형 전화사업자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바드는 전화사업자인 SBC와 제휴, SBC의 관할구역 이외 지역에 DSL 회선을 제공하고 연간 1억5000만달러의 사용료를 받고 있다. 이는 현재 코바드를 먹여 살리는 유일한 자금줄. 그러나 코바드 측은 『이 계약은 원가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며 궁핍한 재정상황에 의한 불공평한 계약이었음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독립 DSL업체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이유는 한가지. DSL 고객들로부터 받는 사용료는 갈수록 인하되지만 DSL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크게 늘고있기 때문이다. 스타넷의 러스 사장은 『자체망을 갖춘 전화회사를 제외하면 지금의 DSL사업은 너나없이 밑지는 장사』라며 『서비스 지원경비 등을 감안할 때 월 사용료 49달러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회선 설치비로 독립 DSL업체에 지급되는 비용은 DSL 1회선인 경우 7∼10달러 수준. 이는 예전의 20달러 선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줄어든 설치비에 비해 설치작업에 드는 비용은 여전하다. DSL의 세트업을 위해 가입자의 가정에 직접 기술자가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에는 가입자들이 직접 DSL을 설치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 DSL업체의 주가는 1달러에도 못 미치고 있는 등 인수비용이 낮아서 전문가들은 이들이 조만간 대형업체들에 인수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DSL사업이 이익을 내는 시점이 대부분의 중소업체들이 정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하반기라는 것. 이로 인해 미국 대형 전화회사들의 음모론과 중소 DSL업체들의 「토사구팽」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