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하 웰컴넷 사장
무인도에 남겨진 한 사람은 300미터를 헤엄쳐 갈 능력을 갖고 있다. 어느 한 방향으로 200미터만 헤엄치면 뭍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과연 이 사람은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은 무인도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 150미터를 헤엄쳐 나간 후 다시 무인도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육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차라리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는 무인도를 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캐즘(chasm)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최근 국내 벤처기업의 현실이 이러하다. 대다수의 벤처기업이 지금 무인도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과연 자신이 어느 정도 헤엄칠 능력을 갖고 있는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의 과도한 육성정책이 벤처 본연의 자세인 기술 개발보다는 주식으로 대변되는 돈놀이와 정부 지원자금으로 사업하려는 일부 나약한 기업인을 양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큰 뜻을 품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일을 추진해가던 벤처기업인의 모습이 다소 퇴색돼버린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요즘 벤처기업들은 시장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추진력을 앞세워 적극적 활동을 벌이기보다는 버티기에 전전하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이 목적이 돼버린 것이다. 경기가 호전됐을 때 그 기업이 살아남는다 해도 시장이 벤처기업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은 기업은 흘러간 시간과 비례해 경쟁력을 상실하게 마련이며 시장은 꾸준히 역량을 키워온 다른 기업들로부터 이미 선점당한 후일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내부역량을 확인해야 할 때다. 현재 우리가 처한 위치는 어디며 무인도를 헤엄쳐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 우리에게 존재하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정확한 방향설정이 캐즘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나름의 전략인 것이다.
옳은 방향을 선택하고 내부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한 배를 탄 사람과 토의를 거쳐 동의를 얻는 것이다. 대기업과 달리 인적, 물적 자원의 열세에 있는 벤처기업의 장점은 전체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이다. 내부 역량을 평가할 때 내재된 기술력 못지 않게 구성원 역시 기준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자산은 구성원, 즉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군에서 자신이 보유한 기계장치, 토지 등 자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자산관리시스템을 도입하듯 벤처기업 역시 자산인 인적 자원을 활용해 효용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내부역량이 확인되고 이를 최대한 활용키 위한 기틀이 마련됐다면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경쟁의 기본전략인 집중화 전략이다. 집중화 전략이란 특정 고객층, 특정 제품, 특정 지역시장 등 한정된 영역으로 분산된 기업의 경영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이다. 대상 표적을 좁혀 집중화 전략을 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며 흔히 비용우위 전략, 차별화 전략 등과 함께 사용, 효율성을 높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 벤처기업들은 조직 구성원 전체와 공감할 수 있는 각 사만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 국내시장은 전략 중심의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선진국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환경 역시 초창기 기술 중심의 시장에서 마케팅 중심의 시장으로, 나아가 전략 및 비즈니스 모델 중심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더이상 기술력 최고의 회사, 마케팅의 귀재만으로 시장을 선점하기엔 부족함이 따른다. 기업 전체의 역량을 파악하고 전략을 정한 후 밀고 나갈 때 1000분의 1의 성공확률에 접근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야말로 벤처기업의 가장 큰 장점, 전체에 의한 전략적 사고로 방향을 설정해 전력 투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금융시장에서의 성공벤처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성장기업의 성공한 벤처기업인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