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안방까지 내준 통신산업

『사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는 정보통신부가 국내 통신장비업체에 어떠한 보호정책이나 기득권을 줄 수 없는 입장입니다. 통신사업자에 국산장비 채용을 늘려달라는 얘기도 공석에서는 못합니다.』

현대전자가 최근 한국통신 ADSL입찰과 관련, 1위 업체로 선정된 노텔네트웍스를 WTO에 제소키로 결정하자 이에 대한 정보통신부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현대의 WTO 제소건은 국내 통신장비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장비는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이 이동통신단말기의 적통을 이어 수출 효자 상품으로 육성하고 있는 품목이다. 선진업체들과 비교해 상용화 시기도 비슷하고 성능적인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국내에서 이미 풍부한 현장테스트를 거쳐 통신장비를 수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신뢰성도 검증받았다.

그러나 이같은 수출 유망품목이 단지 가격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신세에 처해버렸다.

정부는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통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강력한 보호정책을 실시했다. 성능이 부족한 국산장비도 이러한 보호정책에 힘입어 내수시장만큼은 보장됐다. 그러나 통신시장 개방조치가 취해진 이후로는 국산 제품이라도 성능·가격·신뢰성 3박자를 모두 갖추지 않고서는 국내에서조차 발붙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제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접어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만이 국내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적지 않다. 국내 통신장비업체 경쟁력이 선진업체에 비해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WTO체제라 하더라도 유럽·미국·일본을 보면 해당국가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결국 눈에 안보이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만큼 통신시장을 아무 대책없이 개방한 국가가 있을까요.』 이미 선진기업들의 시장 각축장이 돼버린 국내 통신시장을 바라보는 한 관계자의 아쉬움이다.

<정보통신부·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