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제 필립스전자 사장 b.j.shin@philips.com
무역과 자본이동의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경제체제가 변함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쉽게 도태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막대한 물리적 자본을 바탕으로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산업경제적인 경영에 익숙했던 우리 기업들은 급속히 재편되는 지식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산업경제적인 압축성장 시기에는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의 정의」를 추구했다면 지식경제하에서는 결과 그 자체보다는 과정 즉, 「절차의 정의」가 더욱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식경제에서 창조되는 부가가치는 주로 참신한 발상과 혁신에서 나오는데 이런 것들은 공정한 절차를 통한 신뢰 구축, 구성원의 자발적인 협조와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경영현장에서 보면 직원들은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낳는 과정에서 공정한 발언권이 주어졌는지, 거절됐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의견이 고려됐는지, 혹은 결정과정에 자신이 참여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불공정한 의사결정과정이 공정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절차로 인한 기업의 실질적인 손해를 보여주는 한 예로 폴크스바겐을 들 수 있다. 폴크스바겐은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으로 미국시장에서 밀려나게 됐다. 그러나 비용효율성이 높은 멕시코 공장시설을 확충하여 북미시장을 다시 점령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92년 노사는 20% 임금인상에 합의 서명했다. 회사는 직원들이 당연히 만족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노조 지도부도 계약조건 세부 토론에 노조원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또 새로운 합의가 주는 의미를 직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많은 규칙들이 왜 변경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회사의 결정을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고, 대대적인 파업을 일으켜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다. 약 300명의 시위대가 경찰견의 공격을 받았고 정부가 나서서 폭력사태를 막으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 사태로 인해 폴크스바겐의 미국시장 계획은 엉망이 됐고 실적은 악화됐음은 물론이다.
반면 좋지 않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절차로 인해 좋은 결과를 냈던 한 예는 지멘스에서 찾을 수 있다. 지멘스가 닉스돌프컴퓨터사를 인수하여 90년에 설립한 지멘스-닉스돌프정보시스템(SNI)는 94년까지 직원수를 5만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감원했다. 94년 취임한 슐메어 대표이사는 계속되는 적자 때문에 비용절감을 더 해야 하고 가망성이 없는 사업은 정리해야 하는 상황을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했다. 회장은 곧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기업회생에 동참할 지원자를 구했다. 지원자는 처음 400여명에서, 1000명, 3000명, 9000명까지 늘어났으며 회사는 이런 절차를 통해 의사결정을 이끌어 냈다. 직원들은 자신의 의사가 모두 채택되지 않았지만 절차가 공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업무시간이 끝나도 자진해서 일했다. 20억마르크라는 누적적자에도 불구하고 95년부터 이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고 개혁에 성공했다. 고통스런 개혁을 겪으면서도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는 2배나 증가한 것이다.
폴크스바겐의 직원들은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왜 회사에 반대했을까. 반면에 사기를 저하시키는 여건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SNI사는 놀랄 만한 실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문제는 두 회사가 처했던 상황이 아니라 일했던 방식이며, 이는 과정의 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기대 수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새로운 법칙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목표는 무엇이며 누가 무슨 책임을 지는지, 자신이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잘못됐을 경우 어떤 불이익이 돌아오는지, 직원들이 처음부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정치적 경쟁을 최소화시키고 업무 충실도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결과의 정의를 중시하는 경영환경에서 직원들의 태도는 「받을 걸 받았다」라는 결과에 대한 만족과 「기대에 부응해 시키는 건 다하겠다」라는 의무적 협조에 그치지만, 절차의 정의를 중시하는 경영환경에서 직원들의 태도는 「내 의견이 소중하다고 느낀다」라는 신뢰와 소속감을 나타내고 「시키는 것 이상을 하겠다」라는 자발적인 협조를 보여준다. 이런 자발적인 협조와 신뢰없이는 종업원들의 혁신적 발상과 창의적 사고가 발휘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과정이 더욱 중요해진 지식경제하에서 같은 전략이라도 실패하는 경영과 성공하는 경영의 가름은 바로 이 절차의 공정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