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통일독일의 정보통신 통합 교훈과 우리의 과제

★박정석 ETRI 선임연구원 parkj s303@etri.re.kr

남북 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연결 등 그 어느 때보다 통일의 열기가 고조되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남북관계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정보통신 분야의 경우도 지난 한해 남북한 교류협력 활성화 및 통일 이후 남북한 IT통합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추진된 정보통신 분야의 교류협력은 특정 제품의 임가공 및 무역교류 등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북간 교류와 협력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하부구조라 할 수 있는 통신기반이 현재까지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더욱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신인프라 구축은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독일의 경우, 상호간 물리적 접촉이 제한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전 통신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충된 직접통신망은 경제·사회·문화 등 여타 분야에서 교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됨으로써 통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물론 통일 전 동서독간 교류협력 관계가 통일을 전제로 한 상호융합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양독 정부는 분단 초기는 물론 70년대 이후 양독간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된 시기에도 국가승인 문제, 단일국적 문제 등 동서독 관계에 관하여 첨예하게 서로 다른 입장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이 상호교류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접촉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양측 모두에게 최소한의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독은 서독과의 교역을 통한 경제적 이득 이외에 통신교류에 따른 업무부담금이란 명목으로 연간 약 8000만∼2억마르크에 이르는 외화를 벌어들였다.

반면 서독은 동독의 경제적 욕구를 적절히 채워주면서 반대급부로 양독 정부간에 체결된 우편 및 통신협정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주민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받고 양독간 직접통신회선을 확대, 구축하는 중요한 기반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 구축된 양독간의 통신인프라는 70년대 후반 활성화된 경제·문화·과학기술 분야의 교류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때문에 통일 전 동서독간 직접통신회선의 규모는 다른 분야의 교류협력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작용하였다.

우리의 경우, 현재 시점에서 북한의 불명확한 정치적 태도와 불투명한 내부상황으로 단시일 내에 일반 대중간의 자유로운 통신교류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독일의 사례가 보여주듯, 정보통신은 타 분야와 달리 기간사업으로서 막대한 선투자가 요구되는 분야인 만큼 총체적인 통일정책 아래 통일 후의 남북 양측 간의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체계적이며 단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여러 분야의 협력전개로 다양한 창구가 마련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남북한간을 상호 연결하는 통신망 구축은 민·관·학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등을 통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추진전략 안에서 이루어져 할 것이다. 특히, 남북간 통신교류의 방향과 범위를 규정할 수 있는 「통신협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화 노력의 목적은 남북한간을 직접 연결하는 통신회선 한선 한선을 늘려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모두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는 민간주도의 남북간 교류협력을 저해하는 국가보안법·남북교류협력법 등과 같은 제도들에 대한 정비를 하루 빨리 서둘러야 한다. 또한 경제협력과 교류에서 가능한 북측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그 대가로 지속적인 이산가족 상호방문과 남북간 우편 및 통신보장을 위한 직접통신망 확충 등을 북측으로부터 얻어내야 한다. 즉 무엇보다 남북간의 관계는 상호간의 이익이 창출되는 구조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