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월드컵 경기가 열리면 일본에 참패합니다. 명함도 못내밀어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준비 경쟁 이야기가 아니다.
조그마한 로봇들이 벌이는 축구경기인 세계 로봇축구대회의 주도권이 종주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세계 로봇축구계는 지난 97년 한국이 시작한 「로봇축구연맹(FIRA)」과 일본의 「로보컵」으로 나뉘어 있다. 두 진영은 예전의 월드컵 유치전에 버금가는 치열한 세력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비록 한국 축구는 세계 16강에도 못드는 수준이지만 로봇축구 분야에서 한국은 지난 수년 동안 세계대회를 석권하며 로봇왕국 일본을 오히려 앞서왔다. 축구만큼은 일본에 질 수 없다는 국내 축구로봇 개발자들의 오기와 자존심이 빚어낸 결과다. 이런 로봇축구 종주국의 자부심이 무색하게 그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줘야 할 판이다.
일본 「로보컵」 대회는 올해부터 두발로 뛰며 공을 차는 인간형 축구로봇 리그까지 열리는 등 일본 정부와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발전을 거듭하는 데 비해 FIRA 대회는 사회적 관심 부족으로 매년 행사규모가 줄어들고 기술수준도 제자리를 맴돌기 때문이다. 특히 로보컵 주최측은 일본월드컵조직위원회(JAWOC)와 공동으로 세계 20억 축구팬이 쳐다보는 월드컵 개막식 때 인간형 로봇이 걸어나와 축구공을 시축하는 이벤트까지 기획중이다.
반면 국내 FIRA 주최측은 국내 대기업과 정부당국을 돌아다니며 월드컵 문화행사 차원에서 로봇축구대회 지원책을 호소했으나 「장난감같은 로봇축구게임에 지원할 수 없다」는 냉담한 반응에 주저앉은 상황이다.
FIRA 창설자인 김종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월드컵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라 한나라의 문화와 과학기술 역량을 총체적으로 과시하는 행사다. 로봇축구도 한국 축구의 일부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일본과의 자존심 경쟁에서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로봇축구의 열세는 국내 로봇산업의 열세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산업 육성차원에서 로봇축구에 대한 정부·기업체의 관심과 지원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
<산업전자부·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