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디지털방송시대의 아날로그 사고

방송위원회 위원장 김정기

2001년은 우리나라 디지털방송 원년이다. 지난해 말 위성방송사업권을 따낸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은 금년 하반기 디지털위성방송 74개 채널을 띄울 것으로 보인다. 4∼5년 뒤 위성방송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면 채널수는 150∼200개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지상파방송3사도 이미 디지털방송을 시험송출하고 있다.

우리 방송산업이 디지털방송으로 가는 발빠른 행보는 방송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에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20세기 초 전자파에 소리를 변조, 송수신하는 라디오방송과 20세기 중반 나타난 동영상을 전자파에 변조, 송수신하는 TV방송은 1세대 아날로그 방송이다. 그 후 2세대 케이블방송을 거쳐 지금 전세계는 방송의 제3세대로 일컬어지는 디지털방송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방송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아날로그식의 구각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그 한 예로 우리나라 신문들은 대부분 방송을 연예·스포츠 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는 방송을 아직도 오락이나 연예쯤으로 가볍게 보는 사고에 천착해 있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디지털방송은 21세기 전세계에 번지는 디지털혁명을 주도하는 핵심적 문화산업이다. 아날로그 방송을 디지털로 전환한다는 의미는 단지 시청자에게 양방향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제공된다든지, 기술적으로 화질의 선명도가 크게 높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산업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압축기술의 결과 대폭 늘어날 채널을 품격있는 영상물로 채워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최대의 과제는 곧 우리나라 영상산업의 획기적인 발전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위성방송사업자 선정기준을 발표하면서 국내 영상산업의 조기구축을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은 이유도 모처럼 찾아온 영상산업 발전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96년 유통된 미디어소프트 시장규모는 총 11조608억엔이며, 그 중 영상산업은 4조4651억엔으로 전체의 38.5%를 차지했다. 특히 이 중에서 지상파방송·위성방송·케이블방송 등 TV방송 프로그램이 70.3%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방송이 영상산업의 기둥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99년 국내 영상산업 시장규모는 4조6856억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 방송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65.6%로 역시 영상산업의 핵심이다.

국내 영상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창구 역할을 하는 매체와 더불어 실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독립프로덕션과 채널사용사업자(PP)의 발전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이들은 영상산업의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요소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면 이러한 인프라가 정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독립제작사와 PP는 여전히 취약한 수익구조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국내 영상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몇 가지 법적 장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것은 장르에 따른 영화·애니메이션·대중음악 등에 대한 국내 편성비율 규제, 그리고 특정사의 프로그램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송사업자의 제작물 편성비율 규제, 주시청시간대의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 등이다. 그러나 이런 법적 장치만으로는 지역방송사의 경영적 어려움과 국내 영상산업의 취약한 구조 속에서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위성방송사업의 개시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지상파·케이블TV를 포함, 3대 방송매체가 정립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 3대 매체의 균형적 발전은 우리나라 영상산업 발전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사항을 주문하고 싶다. 첫째, 국내 방송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과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지상파방송은 프로그램의 저작권 처리, 제작비의 현실화 등을 통해 독립프로덕션의 육성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위성방송사업자는 PP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위성방송 및 케이블TV사업자는 PP와의 공정한 계약을 통해 영상산업 육성의 한 축이 돼야 할 것이다.

특히 위성방송사업은 양날의 칼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매체력을 가진 디지털 위성방송은 사업자간의 공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위성방송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 3대 매체의 하나로 제역할을 못한다면 국내 영상산업 발전에 보탬보다는 멍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