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전력위기 일파만파

실리콘밸리의 전력위기 파장이 갈수록 꼬리를 물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25일 캘리포니아 전력업체에 전기와 천연가스를 팔도록 강제 긴급명령 시한을 2주간 연장, 캘리포니아 전력위기가 최악의 상황을 일단 넘겼으나 파산에 직면한 캘리포니아주 전력 공급업체에 대한 확실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전력난이 계속될 경우 첨단 기술업체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첨단 하이테크단지에서 전기·가스나 교통 등의 사회 기반시설 문제로 첨단 기술업체들이 떠나가면서 공동화현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부시 행정부의 긴급명령 연기 = 부시 행정부는 이날 캘리포니아 전력업체에 전기와 천연가스를 판매하도록 긴급 명령 시한을 2주간 연장, 오는 2월 7일 오전 3시(현지시각)까지로 캘리포니아주 전력위기 해소책으로 다른 주 전력공급업체들이 여분의 전기를 캘리포니아주에 팔도록 강제 명령조치를 연기시켰다. 이번 조치로 파산위기에 몰린 퍼시픽가스앤드전기(PG&E)와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 등 두 캘리포니아 전력업체에 대한 전기와 천연가스 공급이 이 기간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이 긴급 명령 연장조치가 이번이 마지막으로 연방정부의 추가 지원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실리콘밸리의 전력소비 현황 = 실리콘밸리는 이번 캘리포니아 전력 위기로 가장 많은 주목받고 있는 지역이다. 실리콘밸리는 인터넷 붐을 타고 연간 전력소비 증가율이 5%대로 주 전체 소비 증가율의 두배 수준이다. 첨단 하이테크 업체들에 전기는 마치 산소와 같은 존재로 생명줄이나 같다.

◇하이테크 업체들의 전력위기 대응 = 실리콘밸리 대형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주의 전력공급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대 무정전 전원장치(UPS) 등 자가 발전시설로 단기적인 단전에 영향을 받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웹호스팅업체인 샌타클래라 소재의 엑소더스커뮤니케이션스의 앨런 핸콕 사장은 『우리 회사 데이터센터 하나 하나가 복수의 무정전전원장치와 발전기를 갖추고 있다』면서 『우리는 자체 전력으로 수일간 전력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업체의 방대한 데이터센터에는 야후(Yahoo.com), e베이(ebay.com), 핫메일 (HotMail.com), 잉크토미(Inktomi.com),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com), 구글(Google.com) 등 기업고객의 웹 서버가 설치돼 있다. 이 서버들이 중단된다면 세계적인 인터넷의 일부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이 회사는 워싱턴, 뉴욕, 캘리포니아주에서 눈보라 등에 의한 단전에 사고없이 잘 견뎌냈었다. 엑소더스의 베이지역(Bay Area:샌프란시스코만 주변 실리콘밸리) 운영시설은 1만2000 가구의 전기 사용량에 해당하는 12㎿의 전력을 소비한다. 그럼에도 전기가 판매 상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선에 불과하다.

핸콕 사장은 『어떤 도시에서도 운영이 중단된 적이 없다』면서 『단전 때마다 자체 전력으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샌타클래라시의 자체 전력공급업체로부터 싼 가격에 장기 전력 공급계약을 맺고 있어 PG&E의 변덕스런 전력공급에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했다.

엑소더스커뮤니케이션스는 그러나 안정된 전력 공급원 확보를 위해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샌타클래라 단지에 지역 공익업체가 경영하는 중걔전력기지를 설치하고 엑소더스 및 인근 기업이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자가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전기 소비량이 매우 큰 다른 대형 기술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멘로에너지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선마이크로시스템스(Sun.com)의 팰러앨토 단지의 사용 전력은 26㎿이며 레드우드 쇼어즈에 있는 오라클(Oracle.com)의 타워 3개가 있는 단지는 13㎿의 전기를 사용한다. 이들도 자가 전력 시설로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위기의 파급 효과= 캘리포니아 전력난이 초래할 사태로 궁극적으로 우려되는 점은 주 경제의 견인차인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전력이 풍부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일이다.

인텔(Intel.com) 크레이그 배럿 사장은 최근 실리콘밸리의 전력 사정이 마치 인도처럼 불안해 실리콘밸리에 칩 공장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0개 컴퓨터 기업을 대표하는 실리콘밸리 매뉴팩처링 그룹도 일부 회원기업이 다른 주로의 회사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800개 제조업체를 대표한 캘리포니아 제조 및 기술 협회도 비슷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회사 이전조치는 아직은 서두른 대안인 데다 실제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업체들도 거의 없는 처지다. 이 같은 이전조치가 실리콘밸리만의 특성을 무시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실리콘밸리에는 수많은 기술기업이 한데 모여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며 다른 기업을 이곳으로 계속 끌어들이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레드우드 시티의 컨설팅기업인 멘로에너지이코노믹스의 페리 시오산시 사장은 『기술기업이 이곳에 진출하려면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실리콘밸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곳은 시장이 있고 인재들이 있는 곳』이라고 꼽았다.

다시 말해 제조나 고객 서비스센터 등 기술적 비중이 미약한 기능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인텔 등이 새 칩제조 공장을 건설하려는 기업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높은 부동산 가격과 고임금 등으로 이곳에 공장을 건설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차세대 펜티엄 칩을 설계하는 그런 첨단기술 기업이라면 이곳에 입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사실 이곳을 빠져나갈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교통난과 주거난, 임대료 폭등, 전반적인 포화상태 등의 문제다. 캘리포니아 경제연구센터의 스티븐 레비 소장은 『에너지가 우리를 위기로 모는 게 아니다』면서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인프라 문제의 하나다. 공항, 대중교통시설, 고속도로, 주택을 다른 주에서 수입할 수는 없어도 전기와 천연가스는 수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가 이번 제한적인 단전 조치와 시한적인 전기료 인상조치로 소기업은 7%의 전기 사용료가 오른 반면 중형규모 기업은 12%, 대기업은 15%가 뛰어 올랐다. 새크라멘토의 캘리포니아 매뉴팩처러스 앤드 테크놀로지 어소시에이션의 지노 디카로 대변인은 『회원사의 하나인 한 대형 제조업체는 이번 전기료 인상으로 연간 70만달러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고 밝혔다.

전기료 인상은 90일 동안의 한정적 조치이나 계속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게다가 전기료의 추가인상 가능성도 나돌고 있다. 디카로 대변인은 『캘리포니아 공공시설위원회(PUC)가 얼마전 인상한 것보다 더 많이 인상한다면 제조업체의 주 이탈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캘리포니아 전력공급업체의 파산 위기 = 전력 및 가스 공급업체들은 전력위기에 앞서 총부채가 120억달러인 PG&E와 에디슨으로부터 에너지 대금 상환이 어렵다는 이유로 에너지 공급 중단을 경고해왔다. PG&E와 에디슨는 가격이 통제된 소비자 공급가격을 훨씬 웃도는 도매 전기가격이 폭등해 보유 현금이 바닥난 상태라고 주장하고 대금 지급 불능을 선언했다.

<케이박기자 ks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