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개최된 디지털 세트톱박스 관련 산·학·연·관 조찬간담회는 국내 기업들이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을 석권해 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는 9월이면 국내에서도 디지털방송이 본격 실시되는 등 세계 각국이 속속 디지털방송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디지털 세트톱박스의 수출확대를 위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방안 모색 차원에서 마련된 첫 모임이기 때문이다. 이 날 간담회에서 오간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현황 및 당면과제=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은 지난 98년 이후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위성방송용 세트톱박스 시장은 선진국 중심에서 중남미·중동·아시아 등으로 저변이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 세트톱박스 산업은 지난 80년대 초 대륭정밀 등이 아날로그 방식 위성방송수신기를 개발해 수출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해 초기에는 삼성전기·현대전자·LG 등 대기업이 많이 참여했으나 현재는 휴맥스를 비롯한 전문기업을 중심으로 약 80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시장은 95년 3월 종합유선방송이 실시되면서 케이블TV용 세트톱박스 위주의 소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어 수출비중이 95% 이상에 달한다.
국내 업체들의 가장 큰 애로점은 국내 시장기반이 미흡하고 핵심기술 해외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TV 업체 외에는 대부분이 기업규모가 영세하고 국내 기업간 과당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및 지상파방송의 영역구분을 엄격히 하고 방송프로그램 등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 국내 시장을 조기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또 현재 15%의 특별소비세를 적용하고 있는 PDP TV에 대해 특소세 잠정세율을 적용, 내수기반 확충을 통한 수출경쟁력을 키우는 작업도 필요하다.
◇디지털방송이 세트톱박스 산업에 미치는 영향 =올 하반기부터 실시되는 디지털방송의 영향으로 우선 방송서비스 산업의 총 매출액 규모가 올해 3조9323억원 규모에서 내년에는 4조8228억원 규모로 늘어나고 오는 2005년에는 7조3534억원 규모로 연평균 17%의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국내 디지털TV 시장은 올해부터 오는 2006년까지 총 915만대가 보급돼 약 11조∼13조700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이고 수출도 지난해 28만대(6억500만달러) 규모에서 올해는 78만5000대(27억5800만달러)로 크게 늘고 오는 2005년에는 세계시장의 20%에 달하는 800만대(160억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 세트톱박스 시장은 올해 28만대(2240억원) 규모에서 내년에는 53만대(4240억원)로 늘고 오는 2005년에는 161만대(1조288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대정부 건의사항 =그동안 국내 위성방송수신기 관련 기업들은 지난 80년대말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80여개를 헤아리고 있다. 업계의 자생력 확보차원에서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협력해야 한다.
오는 9월 시작될 디지털방송에 대비해 한국디지털방송컨소시엄(KDB)과 정보통신부에서 한국형 기술표준규격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는 수출비중이 높은 국내 업체들에는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영국, 미국, 스페인 등지에서 사용하는 DVB규격을 그대로 선택하는 게 필요하다.
또 정통부, KDB 등의 계획에 따르면 4월에 디지털 위성방송 잠정 기술표준이 발표되고 6∼7월 중 일반에 SVR 보급이 이루어지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 경우 제품 테스트 일정도 촉박하고 심할 경우 제품의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이 국산 SVR를 외면하고 외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통부 등이 당초 계획대로 9월초에 디지털방송을 강행할 경우에는 관련기기 개발업체들에는 졸속개발 및 제작 등의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