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상임위에서 이동전화 단말기의 보조금제도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의견을 낸 것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보조금 부활론이 올해 초부터 일부 업체의 부추김으로 고개를 든 것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전자업계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전자산업진흥회가 뒤에서 밀고 국회상임위가 앞장서 이 사안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이미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받아넘길 사안은 아니다.
물론 국회에서야 업계의 다양한 이해를 얼마든지 대변할 수도 있다. 전자산업진흥회도 회원사의 요구를 수렴해서 행정부나 국회에 건의할 수도 있다.
해당 업체인 이동전화 단말기 생산업체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최근 들어 단말기업체들은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부진해짐에 따라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단말기 보조금제도의 부활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단말기업체에게는 큰 득이 될 수 있다. 보조금이 지급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수요가 크게 느는 것은 당연하다. 내수 매출이 늘면 단말기업체의 체질도 강화되고, 산업도 부흥하게 된다. 그래서 단말기업체들이 보조금 제도의 부활을 들고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보조금제도의 부활은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 보조금제도가 있으면 아무래도 단말기를 교체하는 데 부담이 적은 소비자가 단말기를 자주 교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소비를 부채질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보조금은 결국 이동전화 서비스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이 실시되면 이동전화 서비스업체들의 경영 부실이 예상된다.
이 같은 폐해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단말기 보조금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그런데 단말기 보조금제도가 갖는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특별한 상황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단말기 보조금제도를 부활시킨다면 지난해 드러났던 폐해가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2.5세대 이동전화서비스가 곧 시작되고 내년이면 IMT2000서비스도 개시된다. 그렇게 되면 적지 않은 소비자들은 또 새로운 달말기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서비스 초창기에는 생산업체들의 단말기 모델 교체가 잦아 소비자들도 단말기를 자주 바꾼다. 게다다 단말기 보조금제도까지 시행되면 이동전화사업자들의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단말기 보조금제도가 부활하면 단말기 생산업체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산업이나 국가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외국의 단말기업체들은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정부에 보조금제도를 강화해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마케팅 강화나 생산원가를 줄이는 등 자구책을 통해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다. 이미 세계 3위의 단말기 생산업체인 에릭슨은 대규모 적자로 단말기 자체 생산을 중단하고 외주생산으로 돌린 바 있다. 세계 1위인 노키아도 올해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통해 난국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단말기 보조금제도의 부활만을 주장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