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통신시장>(2)기간통신사업자 감소

「0.5% 대 99.5%」. 화합물 원소 비율이 아니다. 시내전화의 시장점유율이다. 앞의 0.5%는 후발주자인 하나로통신의 성적이고, 99.5%는 한국통신의 기록이다.

이런 수치를 보고 시내전화 시장이 경쟁 상태라고 판단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쟁체제를 도입한 전세계 어떤 나라에도 이 같은 시장점유율을 나타내는 곳은 없다. 완벽한 한국통신 독점시장이라고 해도 이론이 없다.

정부는 지난 96년부터 시내외·국제전화, 이동전화 등 한국통신이 100여년간 독점해온 각종 통신서비스 시장의 빗장을 풀고 과감한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당대의 경제이론가로 자처하던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본격 드라이브한 통신 경쟁정책은 「경쟁 활성화를 통한 자생력 강화와 대국민 서비스 질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가능한 한 모든 역무에 경쟁체제를 구축키로 하고 기간통신사업자의 라이선스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1개뿐이던 이동전화 부문에 4개의 새로운 사업자를 추가시켜 5강 체제를 만들었다. 1곳의 전국사업자가 장악하던 무선호출(삐삐) 시장에는 서울은 물론 각 도별로 새로운 지역사업자를 대거 허가했다.

무선데이터와 주파수공용통신(TRS)이라는 다소 생소한 부문도 기간통신 역무로 지정, 각각 5개가 넘는 사업자를 등장시켰다. 한국통신이라는 단일기업이 모든 서비스를 담당하던 체제에서 줄잡아 40여개가 넘는 후발 경쟁주자들이 탄생, 경쟁 시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의 재계 분위기도 한몫했다. 통신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치부되면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모조리 미래 수종사업으로 기간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온 나라가 기간통신사업 허가서를 따내는 열풍에 휘말렸고 정부 정책은 시장경제를 실천한다며 찬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불과 5년도 못돼 통신 시장은 전혀 딴판이 됐다. 시내전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사업자 난립에 따른 과열경쟁은 후발주자들을 「적자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게 됐고 엄청난 재원의 선행 투자가 요구되는 통신사업 특성상 아예 간판을 내리는 사업자들이 속출했다.

더구나 통신서비스의 광역화·종합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삐삐나 무선데이터 등은 이동전화에 치인 채 명맥 유지도 어려워져 그많던 사업자들이 전국사업자 한두 곳으로 정리되는 상황에 몰렸다. 삐삐의 경우 급기야 유일한 전국사업자인 SK텔레콤이 27일 인텍크텔레콤이라는 벤처기업에 사업 자체를 넘겨 버렸다. TRS 역무 역시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사실상 한국통신TRS 단일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비록 짧지만 격렬한 경쟁체제가 가동되던 지난 5년의 결과는 일부 거대기업의 시장 지배력만 높여줬을 뿐 과거의 독점체제로 복귀하고 있다. 시장의 핵인 경쟁이 실종된 것이다. 사업자 수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서비스 부분(역무)까지 이동전화 중심으로 단순화하고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