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보기술(IT)업계에선 주가와 상관없이 인수합병(M&A)에 차질을 빚는 보기 드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은 주가폭락으로 인한 매수청구비용 때문에 M&A가 무산되거나 시차를 두고 다시 시도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합병 시너지효과를 의심받아 벽에 부딪히는, 한 차원 더 진전된 새로운 합병무산형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코스닥등록기업인 사람과기술은 1대 주주가 된 노머니커뮤니케이션의 경영권 행사에 반발, 대주주의 양해도 없이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사람과기술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대주주 변동 이후 엔지니어들의 이탈 조짐이 보이는 등 사내에 심각한 동요가 있었다고 한다. 엔지니어가 생명인 주문형반도체(AISC)업체에서 기술인력 이탈은 회사의 존폐와 관련된 것으로 노머니커뮤니케이션이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사업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IHIC의 코스메틱랜드 영업권 양수가 무산됐다. 코스메틱랜드 주요 주주들이 IHIC라는 회사를 신뢰할 수 없는데다 이 회사의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고평가됐다는 이유로 주주총회에서 영업권 양수 결의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피인수업체의 직원과 주요 주주들은 새로운 대주주가 자신들의 회사 체질을 개선시켜 줄 만한 「백마탄 기사」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들을 이용해 다른 이익을 챙기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의 M&A를 빙자해 주식시장에서 평가차익만을 노렸거나 등록 및 상장 업체를 인수해 「우회등록」하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M&A를 통해 우회등록을 하고 기업의 이사진을 변경하는 것은 대주주의 권한이다. 그러나 M&A의 목적이 단순히 기업간 합병이 아니라 시너지효과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대전제를 생각해 볼 때, 새로운 사업비전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인수주체에 대한 피인수업체의 반발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이제 M&A를 할 때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M&A는 피인수 대상업체에 공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국내 IT업계의 체질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