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북한과 아일랜드

◆최신림 산업연구원 산업협력실장

올해 들어 북한과 관련한 논의에서 단연 화두로 떠오른 말이 이른바 「신사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을 정점으로 국내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신사고」는 얼마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북한이 곧 개혁·개방의 길로 전환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의미로 흔히 받아들여졌다.

「신사고」란 말은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이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상관점과 사고방식, 투쟁기풍과 일본새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룩해 나가는 것』을 당면과제의 하나로 제기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엄밀히 따져 보자면 「신사고」는 정체가 불분명한 말이다. 지난 2월 초 「조선신보」는 『서방 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을 신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북한)의 새 세기 진군은 기존 노선의 전환이 아니라 시련을 뚫고 지켜낸 주체 노선의 전면적 개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사고」가 어떻든 분명한 것은 북한이 새로운 세기-북한은 올해부터 21세기가 시작된다고 본다-를 맞이하면서 어떤 「혁신」의 분위기를 고창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우선 북한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가장 간단하고 유력한 답은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의 형편에 그게 웬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강성대국의 건설」이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은 북한이 여러 가지로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무엇이든 다 다르다고 생각해 버리는 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면 북한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이미 21세기와 더불어 정보기술(IT) 혁명의 시대, 지식기반 경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21세기에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 IT 혁명, 지식기반 경제를 이루는 데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라고 모를 리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신사고」와 촌수가 가까운 것은 개혁·개방보다는 IT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발전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이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따라잡고 앞지르기」가 필요하다. 북한은 50년대 후반 공업화에 착수하면서 다른 공업국을 「따라잡고 앞지르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농업과 경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공업화 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천리마 운동」이 그것이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북한이 다시 「따라잡고 앞지르기」를 시도한다면 「지식기반 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하면서 중공업과 농업·경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전략 이외의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강성대국의 건설」과 「제2의 천리마대진군」 그리고 이른바 「신사고」와 관련된 언명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따라잡고 앞지르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아일랜드의 경험을 보자. 이렇다 할 산업 기반 없이 농업국의 지위에 있던 아일랜드가 일약 세계 1위의 소프트웨어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일단 답은 다른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일랜드가 일찍이 세계 수준의 교육제도를 도입해 우수한 IT 인력을 배출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북한은 잘 정비된 교육체계를 갖추고 있고 10여년 전부터 IT 인력 육성에 눈길을 돌린 바 있다. 아일랜드의 방식을 좇아 「따라잡고 앞지르기」를 실행할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셈이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구슬도 꿰야 보배이듯 확고한 정책 의지를 갖고 외국인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IT 인력을 발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신림 산업연구원 산업협력실장 srchoi@ki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