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통신시장>(5/끝)정책방향

대수술이 요구되는 통신시장의 구조조정은 정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간자율 원칙하에 맡길 사안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업계 모두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종합정보통신사업자 육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보통신부가 제시한 3개 종합정보통신사업자로의 구조조정은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인 정책 목표일 뿐이다. 정부는 업계가 이를 지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주면 된다.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업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제3사업자가 초대형 사업자인 한국통신(KT)그룹 및 SK텔레콤(SKT)그룹과 맞서 경쟁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쟁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정통부가 경쟁체제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친KT·친SKT정책 위주로 통신시장을 끌어가고 있다」는 후발사업자들의 주장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막강한 자금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양대 사업자가 포진한 상황에서 제3사업자가 정부의 경쟁정책을 믿고 뛰어들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KT와 맞물리는 후발주자들은 KT가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서비스해야 할 부분(예컨데 114 공동안내)까지도 애를 먹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후발사업자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동전화 시장에서도 후발주자들의 소프트랜딩 차원에서 정부가 갖고 있는 강력한 무기는 SKT의 요금을 인하해주는 권한이다. 하지만 이마저 SKT가 다른 부분에서 요금을 보전, 사실상 후발주자들과 요금 격차를 없애는 마케팅을 펼쳐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후발주자들은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후발주자들의 시장 진입과 안착을 위해 기존 사업자를 견제할 만한 수단은 많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벌려 놨으면(사업권 허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부에 화살을 돌린다.

종합정보통신사업자 육성이 정책 목표가 된다 해서 그간 경쟁정책의 중심이던 역무별 경쟁체제를 마녀사냥식으로 흔들어선 안된다는 주장도 강하다. 정부는 역무별 경쟁체제가 존속 가능한 분야와 기술 및 시장 추세에 따라 한계에 다다른 분야를 구분,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계 성장치에 이른 데다 역무간 경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음성통신과 다양한 부가서비스 창출이 가능한 초고속인터넷 분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음성통신처럼 기술 및 시장 추세에 따라 경쟁체제가 무너지고 있거나 자생력을 잃어버린 서비스는 종합정보통신그룹이란 범주로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경쟁이 단순역무별 경쟁체제에서 종합통신서비스형 경쟁체제로 전환됨을 의미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심이 되는 종합통신그룹이나 종속변수가 되는 개별기업이나 서비스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초고속인터넷처럼 역무별 경쟁체제가 상당기간 존속 가능하고 소비자 및 국가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분야는 일부 구조조정과 함께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경쟁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독점적 대형사업자의 경쟁력과 후발사업자의 한계를 엄정히 판단해 새로운 경쟁정책 제시를 요구받고 있다. 정통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시내전화 가입자망 개방정책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정통부가 중복투자 방지 및 경쟁체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가입자망 개방정책은 논의 초점이 이용대가로 압축되고 있으며 이를 놓고 사업자간에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가입자망 보유 사업자가 10원에 이용한다면 이를 빌리는 사업자도 10원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후발주자들의 시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입자망 개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막강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거대 종합통신사업자와 특정역무의 소규모 사업자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정책에 대한 목소리라 볼 수 있다.

특히 초고속인터넷의 경우처럼 네트워크 인프라사업자는 그 인프라 투자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과거 정부가 한 「초고속인터넷 대중화 및 지식정보사회 구현을 위해 2만원대 상품을 내놓아라」는 식의 저가경쟁 유도정책은 사업자의 부실만 야기할 뿐이라는 것이 지배적 분석이다.

또 새로운 무선통신 자원을 거대 사업자에만 우선적으로 줄 게 아니라 후발사업자가 경쟁체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정책도 절실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장으로 변한 통신시장에서 심판(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