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석의 실리콘밸리 紀行>(8)실리콘밸리 코리아 벤처 성공전략 이상없나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그리고 실리콘밸리 지역을 합쳐 베이지역(Bay Area)이라고 부른다. 베이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은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절반이 실리콘밸리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교민은 얼마나 될까.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우리 교민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샌프란시스코 한국 총영사관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니 민간단체에서는 더욱 파악할 길이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중인 우리 교민단체를 보면 한미상공회의소, 비즈니스클럽, 한미기업가협회(KASE)가 있고, 분야별 종사자 친목단체인 세탁협회, 해병전우회 등이 강한 팀워크를 가지고 잘 운영되고 있다. 한미상공회의소와 비즈니스클럽의 구성멤버들은 대다수가 자영업자이며 하이테크업종 종사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KASE가 우리 교민 1.5세대와 2세대 하이테키(하이테크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구성돼 매우 활발한 모임을 보여주고 있다.

KASE의 회원 연령제한은 없으나 분위기상 20대와 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어 현 시점에서의 평가보다는 미래가 기대된다. 40세 이상, 이민 1세대, 이민 10∼20년 이상된 교민 중에도 하이테크 분야 종사자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파악이 쉬운 사람은 대기업 현지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해 정착한 사람들인데 삼성OB모임이 대표적 예다. 가장 확실히 나타나 있는 업체가 벤처 인큐베이터에 입주해 있는 경우다.

지금은 통합돼 없어졌지만 한국실리콘밸리인큐베이터인 KSI의 과거 입주회사, 현

재 활동중인 벤처인큐베이터 IPARK, 그리고 새너제이시에서 운영하는 IBI에 입주, 경영활동을 하는 업체는 60여개로 명확한 활동상황을 알아볼 수 있다.

문제는 주류를 형성하는 두 부류의 하이테크 사업가 소재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10∼20년 전 나홀로 실리콘밸리로 이민와 고생 끝에 성공, 미국사회에도 조화롭게 적응한 이민 1세대 교민들은 어느 한국인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들 개인을 만나보면 7전8기의 정신 이외에는 얘깃거리가 없을 정도로 고생한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주류가 유학후 이곳에 계속 잔류해 하이테크 분야에 근무하는 교민들이다. 시스코, 인텔 같은 유명 회사에 근무하다가 필요 경력을 거친 후 사업가로 변신, 성공했거나 성공문턱에 다가간 사람들도 한국인 모임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그들이 그나마 얼굴을 내미는 곳은 동창회뿐이다.

대만, 중국, 인도는 실리콘밸리 지역을 떠받치는 외부세력의 핵심이다. 이들의 근황은 아주 정확하게 파악돼 공개된다. 인도인 하이테크사업가 모임인 TIE나 대만인 엔지니어클럽인 CIE의 회원은 각각 900명, 1000명이 넘는다. 이 클럽들은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끈끈한 정을 밑바닥에 깔고 상호간 사업연대를 모색하는 거대 비즈니스 클럽이다.

회원 상호간뿐 아니라 본국 정부, 본국내 기업과 협력도 활발하다. 본국에서 실리콘밸리 진출을 희망하는 후배가 오면 능력에 따라 적극 지원한다. 심지어 백인들도 그 단체에 들어가기를 희망해 문호를 개방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오면 동족 투자가, 마케팅전문가, 변호사, 고급 엔지니어들과 어울려 아주 쉽게 사업협력이 이루어진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 중 하이테크사업자들의 모임인 「실리콘밸리IT포럼」이 최근 조직됐다. 초대 회장은 28년 전 이곳으로 이민와 컴퓨터업체인 AIS사를 운영하는 하명환 사장이 추대됐다. 지금까지 등록된 회원은 모두 50여명인데 올 연말까지 회원수를 1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IT포럼은 KASE와의 연계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정부가 최근 한민족 IT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첫 모임을 오는 6월중 실리콘밸리에서 갖는다고 발표해 기대된다. 그러나 정부관료나 정치가들은 이 모임을 정치, 행정시각에서 보아서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교민들도 이 모임에 적극 참여, 정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혀야 모임이 제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oh@computing.soongs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