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넥스트미디어테크놀로지 대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일단 포기한 듯하다. 오히려 통남봉미로 바꾸지 않았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북한의 변화 요인이 경제 회생을 위한 자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북한은 지금 과학기술 수준의 제고를 위해 또 한번 천리마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북한은 늘 사회주의 우방 국가들로부터 과학기술 및 자본의 원조를 약속받은 터 위에서 새로운 경제계획을 수립해 왔다. 이 점은 향후 남북간 정보기술(IT) 교류에도 밝은 전망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의 푸둥에 있는 IT산업단지를 방문한 배경을 세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IT산업의 낙후는 곧 군사적으로 전자 정보전에서의 패배로 연결된다는 위기감이다. 또 하나는 북한이 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북한이 영원한 후진국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는 강박감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같은 소외가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란 달갑지 않은 전망이 작용했을 것이란 점이다.
현재 북한의 IT 수준은 그다지 낙후됐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의 군사안보분야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눈에 띈다.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는 기관은 미림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민수분야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평양정보쎈터와 조선콤퓨터쎈터가 전담하고 있다. 평양정보쎈터에서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항공교통지휘시스템 「토성6」은 레이더로부터 받은 신호에 기초하여 공중 목표물의 위치, 속도 등을 분석한 후 지휘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적인 공중감시 및 지휘 시스템이다.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은 김일성대학의 컴퓨터 단과대학, 김책공대, 함흥 전자계산기 단과대학 등이 있으며, 이들 대학에서 개발해내는 소프트웨어의 수준 또한 만만치 않다. 그 하나가 1994년 제네바국제발명 및 새기술 전시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지문호출조종체계(지문열쇠)다. 북한이 국제시장에 내놓은 IT상품 가운데는 이처럼 보안문제와 관련된 상품들이 많다.
북한이 소프트웨어 기술에 주력해온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은 기초과학을 중시해온 토대 위에 서 있으므로 소프트웨어 분야로의 진출이 용이했다. 그리고 남한과의 경쟁을 생각해 볼 때 남한이 하드웨어 산업분야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언론과 일부 기업이 북한의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하고 있는 측면은 매우 우려스럽다.
따라서 남북IT교류에는 과감한 추진력과 꼼꼼한 검증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남한의 하드웨어 기술과 상업적 경영기술이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만났을 때 일으킬 수 있는 시너지 효과에는 기대할 만하다. 게다가 북한에는 풍부한 저임금의 고급 노동력과 저렴한 지대(地代)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북 투자 및 기술합작은 명백한 사회주의권과의 교류다. 한국의 수많은 자본가들이 중국 혹은 베트남,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 전문가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예비지식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파산한 사례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최근 현대그룹의 실패 사례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이처럼 남북간 IT교류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첫걸음을 잘못 내딛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남한내의 북한관련 전문기관 및 전문가에 의한 정보제공 및 컨설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