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좁다. 해외로 가자.」
통신부문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남벌」이 시작됐다. 인터넷이라는 가공할 만한 무기를 갖고 국내 인터넷 장비업체들이 일본 열도 공략에 들어갔다.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온 산업대국 일본을 우리 인터넷 장비업체들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430만명을 바탕으로 갈고 닦은 장비기술로 유린하고 있다.
한국은 불과 몇 년 사이 세계 정보강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는 개시 2년여만에 430만명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서비스 발달은 국내 장비산업 부흥으로 이어졌다.
지난 99년 초 알카텔 등 외산 장비가 독점하던 인터넷 장비시장은 삼성, 현대, LG전자 및 국내 중소기업이 가세하면서 국산화 비율을 높였다. 지난해 국산장비가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6%.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국내 장비업체가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음은 물론이다.
◇왜 일본인가 = ISDN을 고집해 온 일본은 최근 정부차원에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에 들어갔다.
일본정부가 예상하는 이달말까지의 ADSL누적 가입자는 10만명. 연말까지 모두 200만명의 초고속인터넷서비스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목표다. 오는 2005년까지는 구리망 가입자와 광네트워크 가입자 규모를 각각 3000만명과 1000만명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수준의 ADSL 장비 기술을 확보한 국내 업체에는 매력있는 일이다. 일본의 초고속망 계획이 우리나라의 발전 모델에 기초한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최대 통신사업자인 NTT에 후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전화회선 임대(MDF) 개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NTT 광 섬유망도 일반 사업자에 개방했다.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기본제도는 마무리 된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지난해 말부터 초고속 인터넷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NTT 및 계열사, JT, KDDI, 도쿄메탈릭, e액세스 외 지방 사업자 등 약 30여 사업자가 ADSL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NTT는 기존 ISDN 서비스에서 ADSL 서비스로 사업 방향을 틀고 있다.
◇배경 = 국내업체들은 일본 진출에 대한 자신감으로 높은 기술 수준을 가장 먼저 꼽는다.
ADSL장비업체인 텔레드림 김양진 이사는 『한국제품의 성능이나 기술 수준은 국제 시장에서 인정한다』며 『일본에서도 한국의 대기업뿐 아니라 벤처기업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국내 통신사업자가 일본과 활발한 제휴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장비업체에는 호재로 작용한다. 초고속인터넷사업자간 제휴가 추진될 경우 국내 장비업체의 일본 동반진출도 더욱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통신 글로벌사업단 가재모 단장은 『한·일간 해묵은 역사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라며 『일본은 한·중·일 삼각 연합론을 줄곧 주장해 왔기 때문에 한국과의 제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시장을 선점해 입지를 다지는 작업이 개별업체가 도전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라는 점을 지적하는 부류도 있다. 특히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초고속인터넷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장비 수입보다는 자국내 기술력 보강에 중점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일본업체의 장비산업 발전대책도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한다.
삼성전자는 『일본은 결코 품질좋고 가격이 맞는다고 무조건 외산을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국 장비산업 보호를 위해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해외업체의 덤핑 공세를 차단하는 등 일련의 지원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황 = 삼성전자는 올 초 현지 법인을 통해 케이블모뎀 6만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케이블모뎀 공급을 통해 확보한 현지 공급선을 확대, 전국 사업자로 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LG전자는 올 하반기에 일본 표준으로 유력시되는 「애넥스(Annex) C 타입」 ADSL모뎀을 출시, 일본 ADSL 제 2사업자인 도쿄메탈릭사에 공급을 추진중이다. 또 지방사업자에 소용량 ADSL 제품 공급을 협상하는 등 메이저와 마이너사업자를 넘나드는 다각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국내 중소 장비업체도 빠른 행보를 보였다. 자체 유통망이 없는 중소업체나 벤처기업은 이미 대부분 일본 현지 사업자에 제품을 공급중인 타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이들은 사업자가 요구하는 특화된 제품군으로 대기업이 공략할 수 없는 틈새시장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