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ETRI원장이 할 일

“직원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파벌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존립을 위협했던 직원간 반목을 극복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인화단결해 나가길 바랍니다.”

오길록 신임 ETRI 원장이 취임식을 앞두고 주요 보직자와의 첫번째 미팅에서 당부한 말이다. ETRI에서 30년 넘게 한우물만 파온 전형적인 ETRI맨인 오 원장이 경영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그간 경상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시작으로 양승택 신임 정보통신부 장관, 정선종 전 원장으로 경영자가 바뀔 때마다 ETRI 조직 전체가 흔들리며 내부적인 병폐들이 노출돼 왔다. 신임 원장이 취임할 때마다 ‘새술은 새부대에’라는 식으로 전임 기관장이 벌여온 일을 모두 뒤집어 엎었고 이에 따라 연구기관의 뿌리가 흔들리면서 내부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전임 정선종 원장이 사회적 추세에 따라 실시했던 구조조정에 따른 부담을 후임인 오 원장이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구조조정 여파로 퇴직을 준비하면서 즐비하게 서있는 연구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다. 개혁과 구조조정에 지쳐있는 연구원들에게 안정적인 연구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도 오 원장이 할 일이다. 신임 오 원장이 취임식에서마저 “연구원 이탈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취임사를 대신한 것도 이같은 정황을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 원장이 주요 보직자와 첫 미팅에서 밝힌 ‘객관적인 인사와 인재양성 등을 통한 연구 분위기 쇄신’도 당면과제다. 물론 오 원장이 본격업무에 들어가면서 시행한 첫 인사의 단추는 ‘행정원을 행정분야로, 연구원을 연구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낸 적절한 인사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단 합격점을 받아 앞으로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오 원장은 연구원들의 인력유출 방지 외에도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그간 ETRI 연구원들이 정부 전시행정의 희생양이 되어 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연구원들을 연구 과제 수주보다는 정보통신분야 원천기술 발굴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민간연구소와 차별화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과기계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

신임 오 원장은 1800여명의 직원을 비롯, 대덕연구단지내 연구원, 나아가 정보통신업계 전체가 ETRI에 시선이 쏠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전=박희범 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