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視界) 제로의 IT 산업계 최고의 항해사는?’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IT 산업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익격감·주가폭락·감원·감산·부도의 어두운 소식으로 뒤범벅된 채 한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깊은 늪으로 맥없이 가라앉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지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나마 믿고 의지하며 따를 만한 인물은 누가될까.
일본의 전자·정보통신 전문 격주간지 ‘닛케이일렉트로닉스’ 는 최근 창간 30주년 기념 특집호에서 이런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가’라는 질문의 앙케트로 이뤄진 이 특집 기사는 일본 IT 종사자의 입장에서 IT 산업을 이끌어 갈 만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1위에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 겸 CEO가 올랐다. 일본이 비교우위에 있는 디지털가전의 개발을 정력적으로 추진, 80∼90년대를 주도해 온 윈텔을 이어 21세기 초고속·대용량의 광대역(브로드밴드) 통신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라는 일본 IT계 종사자들의 주문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인이 두번째로 기대고 싶은 인물로는 오픈소스의 유닉스 OS인 ‘리눅스’ 개발자로 저소비전력칩 ‘크루소’ 개발업체 트랜스메타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활약중인 리누스 토발즈가 꼽혔다. IT 산업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으로 항상 지목됐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를 제치고 토발즈가 2위에 오른 것은 MS 주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음을 상징하는 대목으로 이 잡지는 해석했다.
이번 앙케트 조사에서 상위 30위에 오른 인물을 종합해 보면 반도체 등 기반(기초)기술 분야보다는 애플리케이션 관련 기업의 기술자나 경영자가 기대주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톰을 연상케 하는 2족(足) 보행 로봇 ‘아시모(ASIMO)’를 개발한 혼다의 히로세 마사토(3위), 소니의 애완견 로봇 ‘아이모(AIMO)’ 개발로 일약 스타가 된 도이 도모다다(19위), 무선인터넷의 표본으로 자리잡고 있는 ‘i모드’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NTT도코모의 다치가와 게이지 사장(26위), 세계에서 가장 많인 팔린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과 그 차세대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2’를 개발·상품화한 소니 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구다라키 겐 사장(4위)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빌 게이츠 회장은 ‘X박스’라는 비디오게임기로 새 시장에 진출하는 도전 정신이 높이 인정돼 4위에 오르며 여전히 IT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됐다. 정치인으로 추진력이 강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와 ‘정보슈퍼하이웨이 구상’을 제창한 앨 고어 미 전 부통령이 9위와 10위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 이밖에 휴렛패커드의 칼리 피오리나는 8위에 올라 미국에서 못지않게 일본에서도 능력있는 여성 경영자로 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