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가격 인하가 능사인가

 ‘값이 내리면 소비가 늘어난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시장 상인들도 체험적으로 아는 경제 법칙이다.

 그런데 이 원리가 어느 때나 통용되지는 않는다. 수요가 극도로 위축돼 있다면, 또 조금 지나면 더 값이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 법칙은 유보된다. 최근 인텔의 ‘펜티엄4’ 값 인하를 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11월 ‘펜티엄4’를 처음 선보이면서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주창한 18개월마다 2배의 성능을 구사하는 반도체가 개발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을 따른 획기적인 제품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경쟁사 제품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고 속도가 나지 않는다’, ‘가격이 너무 비싸니 공급가를 낮춰달라’, ‘과연 무어의 법칙을 제대로 적용한 제품이 맞느냐’ 등의 소비자 불만사항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 것이다.

 결국 인텔은 고육지책으로 가격인하를 결정했다. 인텔은 업계 최고속인 ‘1.7㎓ 펜티엄4칩의 가격을 내리는 한편 오는 29일 펜티엄4 전반의 가격을 인하할 계획이다.

  ‘펜티엄4’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가격 인하는 인텔의 제품 판매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인텔 경영진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그동안 성능과 무관하게 침체된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가격 정책이 문제였다고 보고 이번 결정으로 신규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나온 지 몇 개월도 안된 제품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값을 비싸게 매겼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만 남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격 인하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메모리반도체업체나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인텔의 가격인하 조치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관련 부품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수요 촉발 가능성에 대해선 반신반의하고 있다. 심지어 ‘이럴바엔 처음부터 값을 내릴 것이지’라며 혀를 차는 관계자도 있다.

 고가 정책을 펴다가 경쟁사가 제품을 내놓으면 값을 후려치는 인텔의 전통적인 가격 정책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산업전자부·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