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교훈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현대사태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처하는 현 정부의 ‘솜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겐 도무지 이해 못할 구석이 너무도 많다. 비슷한 성격의 두가지 현안을,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일정한 시차를 두고 되풀이되는 이슈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이 너무도 한심하기 때문이다.
현대가 ‘시장’을 볼모로 하고 있다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당사자들은 ‘일본의 애국심’을 붙잡고 있다.
둘 다 말도 안되는 일을 ‘시장과 애국심’의 이름으로 당위성을 버젓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 한다. 두 사건 모두 해결의 키는 정부가 쥐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절절매고 있다. 아니 철저히 끌려다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현대에는 ‘시장과 고용’이라는 덫에 걸려 국민 세금 퍼주기가 끝없이 계속되고, 일본에는 ‘미래지향 관계’에 발목이 잡혀 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갈등을 조정, 통합하는 것을 본업으로 해야 할 정치권도 현대 대책이 특혜니 뭐니,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했내 뭐내 하며 정부 비판에만 열을 낼 뿐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애꿎은 국민의 마음만 멍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우리 경제를 침몰 일보 직전으로 몰고 갔던 재벌기업의 퇴출위기는 벌써 세번째다. 공교롭게도 2년 주기로 재발했다. 97년의 기아, 99년의 대우, 2001년의 현대. 기아와 대우 모두 정부의 판단 착오로 부도처리를 질질 끌다가 실업자를 양산하고 경기후퇴를 초래했다. 앞의 두번은 그나마 IT벤처 육성을 통해 충격파를 흡수했지만 이번엔 그도 약효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굳이 사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심심하면 한번씩 돌출했다. 언론이 부추기고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항의해 겨우 시정약속을 받아내곤 했다. 이 역시 현대처럼 이번에는 잘 통할 것 같지 않다. 새로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은 우경화 색채를 뚜렷이 한 채 ‘수정불가’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기아와 대우 사태를 거치면서 충분한 교훈을 얻었다면 오늘날 현대를 훨씬 세련되고 경제에 충격을 줄이는 방향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발생한 순간부터 그들을 연구하고 인맥을 관리하며 철저한 정보수집을 통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허둥대지는 않을 것이다.
IT기업들은 정부의 현대 처리를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현대의 향배가 하반기 경기는 물론 기업들의 설비투자 의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본 교과서 파동 역시 한국 IT기업들로서는 정서적 자존심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교훈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켜 주는 모습뿐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