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등잔밑이 어둡다

 ‘연구 중복을 감시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중복 시비에 휘말린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최근 발생했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는 최근 비슷한 시기에 각 부처가 지원하는 국가연구개발과제의 현황을 온라인을 통해 검색, 중복투자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각각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부처별로 수행 중인 국가지원연구개발과제를 종합, 유사과제를 중복제안해 지원받는 사례를 방지하고 국가연구개발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구축됐다고 한다.

 물론 시스템 구축 배경은 칭찬할 만하다. 그동안 국가연구개발과제에 대한 관리가 허술해 연구예산은 ‘눈먼 돈’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이처럼 과제를 검색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정부 부처끼리 사전조율이 부족해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하나면 될 시스템을 두 개나 구축한 꼴이 돼 버린 것이다. 그것도 중복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중복되는 아니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기자가 이에 대해 지적하자 양부처 관계자들은 서로 “우리가 먼저 시작했다”, “우리 시스템이 더 우월하다”느니 하는 핑계를 늘어놓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스템이 낫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중복을 감시해야 할 정부 부처가 중복투자를 했다는 사실이 지적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출연연의 효율성을 내세우며 강도 높게 출연연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추진해왔다.

 이런 정부의 의지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연연도 군살을 빼야 한다는 여론의 지지를 얻어 성공을 거두는가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정부는 “제 주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과학자들의 중복연구를 방지한다는 정부 사업이 오히려 중복이라니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기분”이라며 조롱했다.

 ‘성역없는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구호가 이 일로 자칫 국민들에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헛구호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학기술부·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