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대학은 기초학문 보호육성해야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이미 심화의 단계를 넘어 고착화의 단계로 이행되고 있다. 아무리 방송매체를 통해 철학 강좌나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대학 입시에 논리·논술 부분이 도입되고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철학과목이 생겨나도 자본과 시장의 논리와 성장 위주의 틀에 박힌 세계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지금의 사회 현실에서 인문학은 고아가 돼 서서히 예전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마치 디지털로 대변되는 기술적 능력만이 요구되고 충족되기만 하면 이 사회가 희망적이고 안정적인 사회로 무한 발전하게 되는 것처럼 형성돼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급속한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한 과도기의 과정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 문명을 성찰하는 몫은 인문학에 있다. 기존 문명 발전의 단계에서도 확연하듯 과학은, 기술은 스스로를 반성할 능력을 생래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

 기술을 탐구하는 학문을 응용학문, 사회의 본질적인 부분과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을 기초학문이라 명명하는 이유는 기술을 도구로서 사용하는 주체를 인간, 도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주체를 현실사회라 대상화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묵인된 공통담론이기 때문이다.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이 스스로의 기능을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없을 때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기술은 있되 성찰은 없는 사회, 오류는 있되 수정은 없는 사회, 폭력은 있되 비판은 없는 사회다.

 때문에 대학에서의 교육의 문제는 한 사회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대학에서조차 인문학을 경시하고 교육부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학과는 그것이 기초학문으로서의 특수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라는 획일적 기준을 통해 폐과를 유도하거나 학부제의 형식으로 광역화하면서 기초학문, 특히 인문학을 가르칠 공간을 구조적으로 소멸시키려 하고 있다.

 대학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기존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더이상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분야를 시장경제논리를 바탕으로 단지 장사가 안되는 비영리적인 학과라는 이유로 없애고자 하는 시도는 대학이라는 교육의 공간을 상술과 영리 위주의 공간으로 전락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이 사회의 비판적 인력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천박하고 절망적인 행동이다.

 대학은 사회로의 진출을 앞둔 학생들에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문지식과 더불어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합리적·논리적 시각을 키워줄 의무를 갖고 있다. 또 대학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기초학문들을 오히려 보호·육성해야 할 당연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최병성 호서대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