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달 한국전산원 정보화지원단 수석연구원 ryooyd@nca.or.kr
최근 남북관계는 급진전을 이루고 있다. 작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갖는가 하더니 이산가족 상봉도 이젠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IT산업에도 이어져 북한의 IT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북한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무척 많아진 듯이 느껴진다. 더 나아가서는 필연적으로 북한을 포용하고 가야만 하는 당위성이 강조되고, 산업동반자로서도 이미 꽤 성숙해진 듯한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족동질성이라는 대전제하에 통일의 당위성이 강조됨으로써 현실적 고려사항이 간과되는 측면도 나타나고 있다.
IT분야에서 남북관계는 정치적 의미와는 상이한 면을 지닌다. 정치적으로 상호 화해와 협력관계를 다지는 것은 그것이 상호 이해에 부합하며, 실질적으로도 상호 적대적 관계보다는 엄청난 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적·정치적 측면과 달리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는 남북간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며 현실적인 기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IT산업 수준과 소프트웨어 기술수준에 대하여 평가하는 글들을 많이 보았다. 정확한 판단은 이르지만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우리에게도 산업적으로 실익을 얻을 만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IT산업이 통일의 흐름에 편승하여 정밀한 분석없이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정보화의 기본정신은 개방과 공유다. 그리고 디지털혁명은 국경을 허물고 전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IT산업의 협력과 교류를 통하여 통일의 기반을 다지고 남북한의 상호 이해를 가속화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럽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접근 태도는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상호이해와 목표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통일은 중요하지만 통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금물이다. IT를 통한 남북협력 역시 중요하지만 실상을 도외시한 지나친 기대와 환상은 금물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와 우수한 노동력에 대하여서도 실제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있는지를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분야에서 그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분야와 유형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북한의 개방의지는 확실한가 하는 점이다. 마치 비료협상처럼 IT부문 협상도 단기적으로 북한의 당면 결핍을 해소하려는 차원에서만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관계가 민족통일이라는 당위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상호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개방의 전면에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인가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전략적 대응방식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북한도 디지털혁명의 요구와 개방화의 물결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며, IT산업도 통일을 지향하는 총체적 흐름에 부합하여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호간에 투명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의 저변에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 수용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호 교류협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뒷받침이 통일IT의 진전을 훨씬 더 가속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이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기 위하여서는 IT교류가 상호간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방적 우월감과 종속적 위치를 탈피할 수 있고 상호 호혜적인 열린 공간 속에서 민족적 동질성도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